재난영화나 소설은 대개 두 가지 유형을 띤다. 하나는 재난 이후 그것을 소재로 재구성하거나 그 재난 사실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재난을 가정하고 상상에 의존해 만드는 것이다. 앞의 경우 일어난 사건을 철저히 파헤치고 사건과 관련한 사람들을 취재해 사실성에 최대한 맞춰갔을 때 공감도가 커지고, 뒤의 경우는 비록 상상력을 동원한다고 해도 정작 재난이 일어났을 때 얼마만큼 실제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까라는, 사실성이 뒷받침되어야 공감이 커진다.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정치권은 물론 국민의 의견이 둘로 나누어져 심각하게 대치 중이다. 한쪽은 안전을 보장하며 오염수를 마시거나 수영까지 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한쪽은 그렇게 안전하다면 일본 내에서 농업용수나 공업용수로 쓰면 되지 왜 바다에 버려서 주변국의 염려와 불편을 사느냐고 삿대질이다.
경주는 원전과 관련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민감한 지역이다. 딱히 후쿠시마의 사례가 아니라도 방폐장 건립, 노후 원자로 재가동, 맥스터 증설 등과 관련해 끓임없이 문제가 제기된 곳이다. 각 사안이 하나 같이 시민 안전과 관련된 중요한 것들이라 소홀하게 다룰 수 없는 사안들이다.
어쩌면 이런 사안일수록 선례와 합리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선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러시아 체르노빌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체르노빌은 관리자의 조작 실수로 일어난 사고고 후쿠시마는 지진이라는 자연재해가 일으킨 사고라는 점만 다를 뿐 결과적으로는 두 사고 모두 끔찍한 방사능 유출로 도시를 죽음과 오염으로 몰아넣었다. 체르노빌은 원전 사고 발생 이후 무려 37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그 일대가 사람의 접근을 금지할 만큼 심각한 방사능으로 오염되었다. 후쿠시마 역시 지진으로 원전 자체가 멈춘 것은 물론 방사능으로 인해 반경 20킬로미터를 회생불능의 지역으로 만들었다. 그로 인해 입은 피해액이 최소한 5조5000억엔에 이르며, 최대 수치로는 당시 일본의 1년 예산 절반에 이르는 48조엔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영화 ‘판도라(2016, 박정우 감독)’는 사고 발생의 측면에서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와 비슷한 상황을 연출했다. 한반도에 닥친 역대 최대의 지진으로 인해 원전이 폭발된다는 가정하에 생긴 재앙을 시간대별로 예측해 만든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주변 인구와 정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 사이에 걸친 고리원전쯤으로 예측되는 가상 도시다.
판도라의 개요를 간략하게 말하면 방사능 유출 후 주인공이 사고로 매몰된 사람들을 구하다 피폭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다. 여기에 원전폭발의 사고 수습에 혼신을 다해야 할 정부 컨트롤 타워가 경제적인 이유나 정권에 미칠 후폭풍 따위의 이유로 인해 사고를 축소하고 가리려 획책하면서 문제를 더 키우고 끝내는 수습할 수 없을 지경의 난국으로 몰아간다는 가정이 추가되었다.
이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얼마나 큰 피해가 발생하는지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 전개 과정이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전례 없는 지진으로 인해 일어난 사고로 일본 정부는 현명한 초기 대응을 놓친 채 우왕좌왕했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영화에서처럼 끔찍하고 처절한 개인의 희생이 일어났다. 극중 주인공이 사람들을 살리고 추가적인 폭발을 막기 위해 재난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후쿠시마 원전에서 하얀 방폭 옷을 입은 소방대가 사고현장으로 투입되는 장면을 전 세계가 똑똑히 지켜보았다.
이 영화가 개봉된 후 지나친 과장과 원전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한 채 사실을 왜곡했다는 평가와 원전폭발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제대로 예측해 경각심을 주었다는 평가가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우리나라도 지진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가 되었다는 점, 원전폭발 사고가 언제 어떤 형태로 일어날지 모른다는 점, 한 번 사고가 나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서처럼 헤아리기 어려운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전이 설치된 지역의 주민들이 한 번은 심각하게 볼만한 영화일 것이다. 지나친 불안감은 오히려 문제될 수 있지만 원전에 대한 시민의 꾸준한 경각심은 원전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최고의 안전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