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회에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방폐물법)이 세 개나 계류돼 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주당안,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대구 수성구을)의 정부안,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구미을)의 원전업계안 등 3개 법안이다.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경고음이 울리는데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20일 소위원회에서 관련 안건은 논의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핵폐기물이 포화되는 시점이 앞당겨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0일 공개한 사용후 핵연료 포화시점 재산정 결과에 따르면 한빛원전이 2030년부터 저장 공간이 가득차고, 한울(2031년), 고리(2032년), 월성(2037년), 신월성(2042년)원전 등의 순서로 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윤석열정부의 친원전 정책에 따라 포화시점이 지난 2021년 12월 전망 당시보다 대부분 1∼2년 앞당겨진 것이다. 새 저장시설이 마련되지 않으면 7년 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원자력발전 가동이 순차적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다. 고준위 방폐물 저장시설 확충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회는 고준위 방폐물법은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폐기물 저장 용량’을 두고 여야 간 입장차이 때문이다. 원전 설계수명만큼 폐기물만 저장해야 한다는 민주당과 원전 수명을 연장해 폐기물 저장량을 늘려야 한다는 국민의힘 입장이 맞서고 있다. 고준위 폐기물 관리 주체도 제대로 협의가 되지 않고 있다.  김영식 의원 안은 국무총리 소속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를 신설해 담당하는 내용을 명시했다. 나머지 2명의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을 관리주체로 했다. 이를 두고도 여야 간 입장 간격을 좁히지 못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3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고준위 방폐물법에는 모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체계’, ‘부지선정 절차’, ‘원전 내 저장시설 용량’ 관련 내용이 담겨 있다. 만약 이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더 이상의 논란은 없을까? 결코 아니다. 법률안에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마련이 주 내용이지만, 처분시설이 가동되기 전까지는 각 원전 외부에 ‘중간 저장시설’을 둘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경주를 비롯한 원전 소재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점점 커지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원전 내 저장시설이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이 될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경주시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20일 경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고준위핵폐기물 미반출에 따른 사과와 함께 대안제시를 촉구했다. 정부가 중저준위 방폐장 경주유치 후 2016년까지 고준위핵폐기물을 경주 밖으로 반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맥스터 7기를 추가 건설해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 고준위 방폐물법안에 명시된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운영’은 독소조항으로 즉시 삭제하고, 관리주체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대책위는 경주시민과 지역주민에 대한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법률이 우선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의 기자회견 내용에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되더라도 경주를 비롯한 원전 소재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가 담겼다. 사용후핵연료 처리와 관련해서는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차질 없이 이뤄져야 하는 중대 과제임은 틀림없다. 방폐장 부지 선정이 쉽지 않고 공사 기간도 오래 걸리는 만큼 한시가 급한 것도 맞다. 고준위 방폐물을 무한정 임시시설에 보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구처분을 위한 로드맵 설정이 절실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무엇보다 미봉책이 아닌 고준위방폐물 처리를 위한 명확한 기준 마련으로 원전 소재 지역주민들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특히 현재 원전 내 임시로 고준위 방폐물을 보관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배려도 있어야 한다. 그동안 불신과 불안이 가득했던 주민에게 또 하나의 논란거리를 떠안기는 셈이 되는 만큼 그냥 넘어가서 될 일은 아니다. 그동안 원전 부지 내 고준위 방폐물을 적체한 것에 대해 소위 ‘보관세’ 명목의 지원 등 실현 가능한 방안은 분명히 있다. 한 번 잃은 신뢰를 다시 얻기는 쉽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주민들의 의견수렴을 통해 주민을 위한 조치를 내놓길 바란다. 그것이 고준위 방폐장을 적기에 건립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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