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을 마지막으로 일본 만엽집을 다룬 장장 32회에 걸친 칼럼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본 칼럼을 통해 한국은 물론이려니와 일본에서도 다루어져 본적이 없는 만엽집의 핵심이 다루어졌다고 본다.
만엽집의 해독은 향가를 모르고는 불가능하다. 또 향가는 삼국유사에 실린 신라향가를 모르고는 해독될 수가 없었다.
필자는 향가 연구자이지 본격적인 만엽집 연구자가 아니다. 일본어에 대해서도 아주 기초적 지식밖에 없다. 향가에 흥미를 갖고 오래토록 연구하는 과정에서 기연을 만나 신라 향가의 창작법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 활용하여 신라 향가 14장을 완독한데 이어 균여전의 향가까지 완독하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 현전하고 있는 향가 25장 해독을 마친 것이다.
필자는 향가 해독을 마쳤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 후 우연히 신라 향가 창작법을 일본에 전해지고 있는 고시가집 만엽집에 적용하여 보니 일본인들이 지난 천년 간 알고 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나왔다. 그러나 풀이 결과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했고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도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필자는 만엽집에 수록된 4516장 중 1000여장의 해독을 거쳐 만엽집이 명백히 한반도에서 건너간 디아스포라들이 만든 향가집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민족이 현해탄을 건너 갈 때 향가를 가지고 갔다. 신라에서 출발한 ‘소잔오’라는 무인이 일본서기 1번가를 지었다는 내용이 명백히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이 일본 열도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향가로 만들어 담아내었다. 일본의 향가가 신라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한 나라의 국문학을 정의할 때 한 민족이, 그 나라 언어로 기록한 문학을 말한다. 만들어진 장소가 어디인지는 묻지 않는다. 만엽집이란 명백히 우리 민족이 일본으로 건너가 고대 한반도어로 만든 작품들을 모아놓은 고시가집이었다.
현대의 우리민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 뉴욕에 살며 우리나라 언어로 시나 소설, 대본을 써 모아놓은 작품집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만엽집은 우리나라 문학의 한 갈래이다. 이러한 작품을 유이민 문학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밝히게 된 것은 신라향가로 부터 시작되었다. 경주신문 독자들에게 신라 향가가 만엽집을 풀게 했고, 일본 최초의 향가가 신라에서 간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최초로 보고드린다.
경주시민들은 신라 향가의 본고장이기에 신라향가 창작법이 일본의 창작법을 풀어내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맨 처음 보고받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
한국의 향가와 일본의 만엽집은 고대 동북아인들이 남겨놓은 푸른 바다의 진주였다. 그 속에는 역사의 풍랑에 부대끼던 고대 한국인과 그 후손들의 사랑과 염원이 담겨 있었다.
경주시민들께서 향가를 사랑해주시고,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 간 만엽 향가 역시 사랑해 주시기 바란다. 이를 바탕으로 한일 우호관계가 더욱 탄탄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엽집 해독이 한일국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거나, 한일 갈등을 증폭시키기를 전혀 바라지 않는다.
본 칼럼을 게재할 수 있도록 지면을 허락해주신 경주신문 관계자들에게 큰 감사를 드리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아주 낯선 내용을 끝까지 읽어주신 경주신문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