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통천황이 저승으로 떠나고 난 뒤 84번가가 배치되어 있다. 84번가는 만엽집 권제1의 마지막 작품이자 권 제1 최대의 문제작이다. 84번가는 천무천황의 아들 장황자(長皇子)가 천지천황의 아들 지귀황자(志貴皇子)를 불러 함께 연회를 가졌을 때 만든 작품이다.秋去 者 今 毛 見 如 / 妻 戀 尒 / 鹿將鳴山 尒 高野原 之 宇 倍 “가을(秋=持統天皇)이 가고나니 이제 나타남이여? / 그대를 그리워했다오. / 사슴이 장차 울게 될 산 고야원(高野原)의 집에 그대를 모시리”
원문 속 ‘추(秋)’는 추관(秋官)의 생략어이다. 중국 주나라의 관직으로서 형률을 관장하는 직위다. 여기에서는 지통천황을 말한다. 지통천황은 매우 혹독하게 형률을 집행한 천황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녀는 친언니의 아들인 대진(大津) 황자를 조사도 없이 하루만에 모반죄로 처형하였다. 지통천황을 추관(秋官)이라고 불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추관이 갔다(秋去)’라는 구절은 ‘지통천황이 사망했다’로 풀어야 할 것이다. “가을(秋=持統天皇)이 가고나니 이제 나타남이여?”라는 구절은 천지천황의 아들인 지귀(志貴) 황자가 지통천황 치하에서는 무서워 숨소리도 내지 않다가, 그녀가 죽고 나니 나타났다는 의미이다. 천지 천황의 후손들은 지통천황에 의해 엄중히 감시받고 있었고, 조금만 이상하면 엄중히 처벌되었다는 사실이 암시되고 있다.
천무천황은 형 천지천황이 사망하자 난을 일으켜 조카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하였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일으켜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것과 같다. 천무와 지통의 후손들은 십 대에 걸쳐 황통을 이어갔다.
천지천황의 아들 지귀황자가 천무천황의 아들 장황자에 의해 모임에 초대받았다. 지귀황자는 지통천황 치하에서는 숨도 못 쉬고 지내다가 지통천황이 사망하니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은인자중하며 지냈던 지귀황자의 아들이 훗날 천황으로 등극하게 된다. 광인천황(光仁, 770~781)이다. 드디어 천지천황의 손자가 천무천황계를 물리치고 황위를 되찾게 된 것이다. 이로써 만대를 이어가고자 했던 지통천황의 후손들로 이어지던 황통이 단절되었다. 84번가에 고야(高野)라는 고유명사가 있다. ‘사슴이 장차 울게 될 산 고야원(高野原)’이라는 구절이다. 지통천황 후손들의 황통을 끊고 즉위한 광인(光仁)천황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고야신립(高野新笠)이라는 여인을 황후로 맞았다.
광인천황과 고야황후 사이의 아들로서 황위를 승계한 이가 간무(桓武)천황이다. 이후 지금까지 그들 부부의 후손들에 의해 황위가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 ‘사슴이 장차 울게 될 산 고야원(高野原)’이라는 구절이 있는 84번을 마지막으로 만엽집 권 제1을 끝냈다. 여기에서의 사슴이란 제왕을 말한다.
만엽집 최대의 문제 구절에 나오는 고야(高野)라는 이름의 황후에 의해 천황이 태어났다. 이를 우연이라고 볼 것인가.
향가시대의 사람들은 향가의 힘이 황위의 교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누군가가 만엽집의 체제를 바꾸었다. 만엽집 권 제1에 고야의 후손들이 황위를 이어가게 주술을 걸었다.향가의 힘은 이처럼 가공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