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림사 삼성각은 명부전과 함께 가장 후미진 곳에 배치되어 있다. 삼천불전의 서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오르면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불전이 삼성각이다. 부처님이나 보살을 모신 전각은 편하게 둘러볼 수 있으나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 과 이들을 함께 모신 삼성각에서는 발걸음이 멈칫해진다. 삼성각에 모신 세 성인은 불교의 시원지인 인도와는 관련이 없다.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해지면서 이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믿어오던 여러 신들이 유입되어 불교 본래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불교유신론』을 펴낸 만해 한용운은 시왕신앙과 함께 삼성에 대해서 저급한 불교문화의 한 형태라고 하였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매우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져 여전히 불교문화의 한 면을 이루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는 말이 있다. ‘입을 열어 말을 하면 바로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쭉 해오던 이야기를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다. 대승불교 경전인 『대반열반경』에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체의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삼성각이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다르다고 그냥 나와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기림사 삼성각에는 칠성(七星), 산신(山神), 독성(獨聖)을 함께 모시고 있는데 조각상이 아닌 불화이다. 왜 사찰에는 이성각, 사성각은 없고 삼성각만 있을까? 숫자 3은 ‘해·달·별’ ‘상·중·하’ 등 우주 만물의 근원이라는 주역의 천지인(天地人)과 연관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환인·환웅·단군 등 삼신을 숭배하였다. 3원색이 있고 옛이야기 속 주인공은 ‘아들 3형제’ ‘셋째 딸’이다. ‘삼시 세판’ ‘삼색나물’ 등 일상생활에서도 숫자 ‘3’은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찰에서도 삼성각 이외에도 주로 전각 안에 모시는 불상은 삼존불이라고 해서 ‘3’이라는 숫자를 중시하고 있다. 삼성각에서 가운데 모시고 있는 칠성은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그 좌우 일곱 부처님이 칠성신이다. 칠성신은 도교에서 유입된 신으로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 이 신은 옛날부터 우리나라 민간에서 재물과 재능을 주고, 아이들의 수명을 늘려주며,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주는 신으로 믿어왔다. 이 칠성신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처음에는 사찰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았다가 점차 본래의 기능을 되찾아 별도의 전각인 칠성각에 모시거나 독성, 산신과 함께 삼성각에 모신다. 칠성의 왼편(동편)에 모신 분이 독성(獨聖)이다. 독성으로 모시고 있는 나반존자는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깨달았다. 독성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부처의 제자가 된 나한으로 말법시대에 출현하여 중생들을 교화했다고 하는데 부처의 제자 중에는 그의 이름이 없고, 이름을 거론한 경전도 없다. 그래서 중국 천태산에서 혼자 도를 닦아 연각(緣覺)을 성취한 나반존자(那般尊者)를 독성이라고 생각하거나, 빈두로존자 혹은 가섭이라 하기도 한다. 흰머리와 희고 긴 눈썹 등 외모상 비슷한 점이 많고 신통력이 있다는 것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의 문헌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한국 사찰의 독성을 단군신앙의 불교적 전개라고도 한다. 이곳 독성은 기괴한 바위를 배경으로 아주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옆에는 동자가 차를 끓이고 있다. 칠성의 오른쪽(서편)은 산신이다. 산신은 불교가 전래되기 전부터 믿던 토착신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에 이르기까지 산신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이 산신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호법신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칠성 탱화를 보면 호랑이 등에 걸터앉아 있는 산신 오른쪽 개울 건너에는 동자가 산신에게 공양할 산삼, 복숭아, 영지버섯을 막대기에 꿰어 어깨에 걸치고 산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본래 기림사에는 산령각이 있었는데, 다른 사찰에 있는 산신각과 같았다. 1899년 기림사에 대한 대대적인 중수가 있을 때 산령각도 함께 보수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1979년 무착스님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이 삼성각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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