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나 참사는 영화제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소재다. 극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숨막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사람의 갈등을 통해 삶의 의미를 조명하고 재난이나 참사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오류들을 통해 그것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생일(2019)’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다. 그러나 단 한 차례도 참사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세월호 참사 후 남겨진 어느 가족을 조명하고 있어서다.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수호라는 학생의 가족들이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사는지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이겨 나가는지를 그려낸 영화다. 이종언 감독이 세월호 유가족들 곁에서 오랜 기간 그들을 지켜본 후 만든 영화라는 소개처럼 유가족들의 아픔과 슬픔, 다시 살아가려는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 가슴을 후벼판다.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세월호에서 희생당한 수호(윤찬영 분)의 가족과 친구들이 수호의 생일을 맞아 서로에게 간직된 기억들을 선물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골은 이 일을 겪지 않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 사고로 해외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느라 아들의 장례식에조차 참여하지 못한 아버지(설경구 분)와 아들의 믿기지 않은 죽음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 어머니(전도연 분), 오빠의 죽음 이후 죽은 오빠에게 사랑을 빼앗긴 어린 여동생(김보민 역)이 부딪히는 갈등은 처연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 깊은 충격이 결국은 마음껏 소리내어 울고 솔직히 슬픔을 표출함으로써 일부분이나마 치유된다는 것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만큼 참사가 남긴 후유증은 당사자가 되어보지 못한 입장에서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깊고도 큰 것이라는 반증이다.
이 영화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수호의 아버지가 한사코 정부에서 제시하는 보상금 타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금쪽 같은 자식의 죽음을 돈으로 바꾼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마당에 보상금으로 참사를 덮으려는 시도를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부모들이 터무니 없는 금액을 요구, 자식의 죽음을 돈으로 흥정하려 한다는 당치도 않은 괴담이 극우 유튜브들을 통해 날조되고 유포되기도 했던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그 깊은 아픔과 의문이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는데 또 다시 이태원 참사라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참사가 생겼다.
참사로 목숨 잃은 당사자들의 허망함이야 말할 것 없겠지만 이 사고로 남겨진 유족들의 마음은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이번 참사 역시 꽃다운 젊은이들이 무참히 쓰러졌다는 측면에서 유족들의 마음은 더 아플 것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 역시 비통하고 안타깝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번 참사의 원인이 경찰과 공직자들의 무사안일에서 비롯된 것이고 11번이나 접수된 시민들의 제보조차 무시된 것이 밝혀져 ‘국가부재’를 실감하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과 공직자들은 참사를 수습하고 원인을 규명하는데 주력하기보다 집권자에게 아부하기 급급해 급격히 민심을 사찰하는가 하면 참사 자체를 ‘사고’라 규정하거나 ‘리본에 근조 글씨를 못 쓰게 하라’는 등 국민정서와 반하는 지시로 정부 스스로 구설을 만들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연일 장례행사에 참석하고 종교행사마다 다니며 비공식적으로 애도와 사과를 표명했을 뿐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아 또 다른 의구심을 낳기도 했다.
물론 우리는 이번 참사 역시 세월호 참사가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뎌지고 익숙해질 것임을 안다. 그러나 유족들은 해마다 숨진 가족들의 생일날이 되면 남몰래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그 눈물이 조금이라도 덜 흐르도록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문책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그래야 참사 희생자들의 생일들이 조금이라도 덜 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