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엽집을 연구하면서 느끼는 미스터리 하나가 있다. 만엽집 최대의 수수께끼일 것이다. 현재 만엽집 권제1에 수록된 작품 수는 84장이다. 84라는 숫자는 만엽집의 숫자 개념으로는 있을 수 없는 파격의 숫자이다. 만엽집의 숫자 개념을 권 제1에 적용하자면 만엽집 권 제1은 마땅히 80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8은 ‘많다’의 개념이다.
사통팔달, 팔선녀 등에서 이러한 숫자 개념을 본다. 그래서 80은 무한대의 숫자를 상징한다. 하나하나의 향가도 힘을 가지고 있는데 무한대의 향가 작품으로 구성된 만엽집은 초강력 힘으로 지통천황 후손들의 치세를 이어가게 해야 할 것이다. 그를 위해 만엽집 편찬자는 당연히 80번가로 만엽집 권제1의 끝을 맺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가 80이라는 무한대의 숫자를 파괴해버리고 84로 만들었다. 의도적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숫자가 나왔다. 여기에는 특정한 의도가 숨어있다. 누군가 지통후손들의 황통을 끊어버리고자 한 것이다.
그를 위해 4편의 향가를 만엽집 권제1에 추가하였다. 그것이 81~84번가이다. 지통으로 부터 이어지는 황통을 끊고자 하는 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우선 사람들 마음에 둥지 틀고 있는 지통천황을 저승으로 보내버리고자 했다. 틀림없었다. 그녀의 치세를 마감하기 위한 향가 3편이 권제1에 추가되어 있었다.<81번가> “산 너머로 지통천황이 정자(井字) 꼴로 구획하여 지은 등원경이 떠나가는 게 보인다. / 지금까지의 공적을 알려 그대를 이롭게 하리. / 귀신의 바람처럼 대단했던 그대의 기세를 이세신궁의 처녀들이 드러내고 있다” 711년 지통천황 치세를 상징하는 등원경이 불에 타버렸다. 그리고 81번가부터 만엽집 작품 구조에 강렬한 단층선이 나타나고 있다. 등원경과 지통천황을 저승으로 보내고 있다. 없어도 될 작품이 배치되어 있다.<82번가> “포구에서 등원경이 저승배 타는 것을 도우라. / 정들었던 옛 도읍이 저승배 타는 것을 도우라. / 그대에 대한 사랑은 오래도록 굳세어 변함없을 것이다. / 하늘에 가시어도 온 나라에서 절하고 있는 우리를 응당 보시리” 이 작품 역시 등원경을 환송하고 있다. 붙잡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83番歌> “바다 밑 물굽이 치는 나루에 하얀 물결이 솟구친다. / 밭 위의 산을 어느 때 사슴이 넘어갈 것인가. / 세상물정 모르는 분께서 마땅히 나타나시어야 하리” 등원경을 보내더니 이번에는 지통천황을 환송하고 있다. 이로써 한 시대가 마무리되었다. 작자는 지통천황에게 갈 때가 지났으니 비록 저승바다에 흰 파도가 일더라도 이제는 떠나셔야 한다고 저승길을 재촉하고 있다. 한 시대가 강제로 보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