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에 막중한 영향력을 가졌던 지통천황이 건설한 등원경을 버리고 새로운 수도 평성경으로 천도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한 사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평성경(平城京) 천도를 둘러싸고 주의 깊은 배려가 있었다. 등원경(藤原京)을 폐기하지 않도록 했고, 또다른 조치로 새로운 도읍인 평성경(平城京)과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샤머니즘적 방안까지 강구되었다. 이것은 저승에 가 있는 지통천황의 노여움을 방지하는 일방, 그녀의 정통성을 대대로 승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80번가>青丹 吉 寧樂 乃 家 尒 者 / 萬代 尒 / 吾 母 將 通忘 / 跡念 勿 “푸르고 붉게 화톳불이 켜진 평성경, 남녀노소 편안하리라. / 우리는 만대를 이어가리라. / 등원경과 평성경을 왕래하는 수고로움을 생각지 않으리라. / 지통천황의 공적을 잊지않으리라” “우리는 만대를 이어가리라” 작품 속 이 구절이 당시 천황가의 염원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도읍으로 옮겨 가며 그들이 행했던 주도면밀한 조치를 살펴본다. 천도를 하지만 등원경과 평성경 두 곳은 매우 가까운 곳임을 강조하고, 두 곳 중간중간에 수많은 집을 지어 마치 두 도시가 이어지는 것처럼 하였다. 뿐만 아니라 두 남녀를 선발하여 두 도시 사이를 끊임없이 왕래토록 조치하였다. 이것은 두 도시가 한 도시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새로운 도읍 평성겸(平城京)에는 붉은 깃발을 매달아 놓도록 했다. 붉은 색은 천무천황과 지통천황이 임신의 난을 일으켰을 때 그들의 군사들로 하여금 사용하게 했던 색깔이었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이 붉은 색은 천무천황과 지통천황의 상징색이 되었다. 단절을 막고, 정통성을 잇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샤마니즘적 조치가 뒤를 이었다. 이로써 본 작품을 지은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통천황의 공적을 잊지않으리라. 우리는 만대를 이어가리라” 지통의 후손들은 향가의 힘을 동원해 자신들만이 독점적으로 만대를 이어 황위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그들에게 향가는 자신들의 염원을 이루어지는 마력의 힘을 가진 주술가였고, 황위를 보장했던 도구였던 것이다. 지통천황의 후예들은 향가의 힘에 의해 자신들이 황통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를 위해 향가집이었던 만엽집을 만들고, 향가집의 힘으로 소원을 현실화하고자 했다. 고대인들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힘의 노래였던 향가는 한편의 작품으로도 천지귀신을 움직일 수 있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여러 편의 향가를 한 곳에 묶어 놓으면 향가가 가진 힘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향가에서 8이라는 숫자는 많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80은 무한대를 말하는 숫자다. 만엽집의 만은 1만이 아니었다. 무량의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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