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통천황은 황위를 물려줄 아들이 없어 손자에게 황위를 물려주어야 했다. 그 손자가 문무천황이었다. 그러나 그 손자도 황위를 물려받은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말았다. 할머니 지통천황으로부터 황위를 물려받았으나 24살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초벽황자와 문무천황 두 부자가 연이어 단명으로 삶을 마무리하였다. 이러한 날벼락이 없었다. 어머니 아폐황녀가 눈물가를 만들어 바쳤다.<76번가> “문무천황께 활 쏘는 소리가 어찌해 나는가. / 사람들과 대신은 방패 되어 서 있거라. / 슬프구나.” 아폐황녀는 아들의 죽음에 ‘활을 쏘는 것이 무슨 이익(利)이 된다는 말이냐. 아무 소용이 없다’라며 오열하고 있다. 어머니 황녀의 말에서 고대인들이 망자에게 활을 쏘는 행위는 떠나가는 이에게 ‘이익(利)이 된다’고 믿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어머니였던 아폐황녀가 직접 즉위하기로 하였다. 문무천황이 너무 일찍 요절하는 바람에 뒤를 이어 즉위할 손자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원명(元明)천황이다. 원명천황은 아들 문무천황이 죽고 난 다음 3년만에 등원경( 藤原宮)을 떠나 평성경(平城京)으로 또다시 천도를 결심하였다. 지통천황이 등원경으로 천도한지 16년 만이었다. 아마도 등원경(藤原경)이 길지가 아니라는 주변의 권유에 따랐을 것이다. 원명천황이 새로운 수도 평성경(平城京)으로 가는 도중 가마를 멈추게 하고 멀리 보이는 아스카 청어원궁(淸御原宮)이라는 궁을 바라보며 <78번가>를 지었다. 길지 않은 기간에 세 번의 수도 이전이 있었다. 아스카 청어원궁(淸御原宮)에서 등원궁으로, 등원궁에서 평성경(平城京)으로의 천도였다.<78번가> 飛鳥 明日香 能 里乎 / 置 而 / 伊 奈婆 君 之 當 者 不 所 見 香 / 聞 安 良武 “그동안 날아가는 새나 아스카 청어원궁과 이웃으로 지냈으리. / 지통천황께서 아스카 청어원궁을 폐기하셨지. / 그대에게 지통천황이 벌을 주어 없애버리라고 하였지. / 보고해 오기를 등원궁(藤原宮)은 아무 탈 없이 평안히 지내도록 조치하였다 하는구나” 지통천황이 아스카 청어원궁(淸御原宮)을 버리고 등원경(藤原京)으로 천도한 원인이 언급되고 있다. 무엇인가 벌을 내리는 차원에서 아스카의 궁을 폐기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아들 초벽(草壁)황자가 요절한 데 대한 문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등원궁도 길지가 아니었다. 문무천황 역시 그곳에서 요절하고 말았다. 평성경(平城京) 천도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원명천황은 길지가 아니었다고 하나 등원경(藤原京)을 폐기하지 않도록 조치하였다. 비록 천도는 하나 등원경(藤原京) 관리에는 성심껏 조치를 다했다. 지통천황과의 단절이 아니라 지통천황의 정통성을 이어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등원경(藤原京)은 천도 다음 해인 711年 불에 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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