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통천황이 702년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치고 사망하였다. 그녀의 공을 말할 때 향가의 대중화에 대한 업적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향가는 지통천황에게 종교에 해당되었다. 향가는 앞서 하늘로 떠난 아들을 보호하여 주었고, 상처받은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었다.
지통천황은 전국에서 향가를 잘 짓는 사람들을 찾아 불러들여 그녀의 곁에 두고 다량의 작품을 만들도록 하였다. 향가의 힘을 일본 각계에서 믿도록 했고, 적극 수용되도록 했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향가가 그녀의 후원에 힘입어 봄날 화단의 꽃처럼 일본 땅에 화사하게 만개하였다. 향가는 황실을 주변으로 구성원들의 개인적 소원을 이루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수도 건설과 같은 국가적 토목사업의 성공을 위하여서도 향가가 가진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향가를 아름답게 만개시킨 지통천황을 ‘만엽향가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가 불러 일으킨 향가의 꽃바람이 일본을 뒤덮었다. 현재 일본에 전해지는 4516장이나 되는 대규모 향가집의 모태가 되었다.
그녀가 사망하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그녀의 영혼을 환송하기 위해 수많은 눈물가를 만들어 바쳤다. 그중 몇 작품을 선별해 감상해 보도록 하자.<66번가> “천무천황의 큰 반려이셨던 높으신 스승께서 물가로 가신다. / 저승배들이 베틀의 북처럼 들락날락하더라도 / 배에 타지 않고 바닷가에 누워 편히 주무실 것이다. / 굳센 분이셨다” *지통천황은 운명의 힘에 의해 정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게 되었다. 남편 천무천황과 함께 일본 고대사 최대의 난이라고 하는 임신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여러 명의 비 중 유일하게 남편 천무천황을 따라가 승리에 힘을 보탰다. 천무천황의 공이 50%라면 그녀의 공이 50%라는 말까지 있다. 그래서 본 작품에서는 지통천황을 천무천황의 큰 반려라고 하는가 하면, 매우 굳세었던 분이라 하고 있다.<73번가> “우리의 세상물정 모르시는 분께서 아들에게 가려고 새벽에 나가신다. / 물가에 바람이 부는데도. / 왜국의 유순한 백성들이 울고 있다. / 아버지와 어머니가 묘에 계시니 나는 아무리 추워도 손에 입김을 불지 않으리. / 지통천황이시여, 서두르지 마시라” * 지통천황이 외아들 초벽황자에게 가려고 바람이 부는데도 새벽 일찍 길을 나섰다. 새벽에 길을 나서지 않아야 하는데도 세상물정을 모르기에 길을 나섰다. 되돌아 올 수 없는 저승길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데 서둘러 갔다고 탄식하고 있다.<75번가> “등원경 건물 사이 산에서 불어오는 새벽 바람이 차다. / 여행길 사람들이 옷이야 응당 빌려주겠지만 / 세상 물정 모르는 여인이시여, / 남이 옷 빌려 준다고 오래 여행하시지 말고 곧 돌아오셔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