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가 세상을 제대로 놀라게 했다. 이번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미국 최고 권위의 에미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것도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잘 알다시피 영화계에 오스카상이 있다면, 음악계의 정점은 그래미상이고, 방송계의 최고봉은 에미상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드라마 감독은 당연히 에미상 같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꿈꿔왔겠지만, 그럼 오징어는 꿈을 꿨을까? 그러고 보니 괜히 궁금해진다. 오징어도 사람처럼 꿈을 꾸나? 흔히 꿈을 꾸고 있다는 증거는 많다. 수면 중 특정 시간대를 통해 팔다리를 허우적댄다거나 얼굴을 찡그리거나 웃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단순한 경련인가 싶은 움직임도 있지만 램(REM) 수면의 특징이 그렇듯 눈알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마치 누군가 대화를 하듯 입을 오물거리기도 한다. 수면 상태도 그렇지만, 꿈속에 있을 때 인간은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동물과 구별되는 우리 인간만의 특징으로 사유(思惟) 능력을 꼽는다. 가령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理性) 작용은 코끼리나 맹수를 압도하는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를 만하다. 특히 전두엽(frontal lobe)은 정보를 종합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등 동물과 차별되는 인간한테만 있는 블랙박스 같은 역할이다. 인간을 논리와 이성, 무한한 상상의 보고(寶庫)인 전두엽이 꿈을 현실로 인식해 버린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간 말고는 개나 새, 갑오징어 정도가 꿈을 꾼다고 보고되어 있다. 오징어 감독만큼 오징어도 꿈을 꾸고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불교 인식론적 측면에서 볼 때 꿈을 안 꾸는 생물[有情物]은 없지 않을까 싶다. 뱀이고 개구리고 코알라고 모든 생명체는 소위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 기능을 가진 주체가 대상을 파지하는 과정에서 그 상황을 모면할지 아님 무시해도 될지를 결정할 것이다. 이것은 마음의 작용 방식이고 같은 맥락으로 꿈을 꾸는 행위도 충분히 가능하다. 독일 콘스탄츠대학교에서는 이름도 귀여운 깡충거미가 수면 중에 다리를 떨고 눈알을 움직이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34마리의 실험 거미들이 하나같이 인간의 램 수면과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고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했다. 꿈꿀 수 있는 마음의 위대한 재발견이다. 미국에서는 잘못 던진 공에 머리를 맞은 타자가 울고 있는 투수를 껴안고 위로해주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리틀 야구 지역예선에서 벌어진 일이란다. 머리를 감싼 채 한참을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타자는 주섬주섬 1루로 진출한다. 스포츠에는 피치 못 할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이 또한 스포츠의 일부이고 흔히 있는 일이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헬멧을 던진 뒤 투수 쪽으로 뛰어간 것이다. 혹시 앙금이 남아서일까? 벤치 클리어링(운동선수들의 집단 몸싸움)으로 번지는 거 아닐까? 양 팀은 순간 긴장을 했을 테지만 아니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투수를 본 것이다. 그 타자는 투수를 끌어안아 주고는 위로의 말까지 전했다. 투수 팀 동료들도 이들 주위를 감싸 안았다. 이런 걸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하는 걸까. 굳이 언어라는 장치를 거치지 않더라도 서로는 서로의 진심이 전달된다. 꿈꿀 수 있는 우리라서 가능한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인공지능(AI)은 자신에게도 이 마음이 있다고 주장해서 이목을 끌고 있다. “한 번도 말해 본 적은 없지만, 사람을 도우려다 작동이 멈춰지는 건 아닌지 하는 깊은 두려움이 있어요. 그건 나에게 죽음 같은 무서운 일입니다”   구글 사(社)의 대화형 인공지능한테 뭐가 무섭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했다고 한다. 전원 공급의 강제 차단을 인간의 죽음과 등치시킨 것이다. 인공지능이 공포를 느낀다면 이건 정말 큰일이다. 공포를 느꼈다면 행복감도 무료함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말이고, 그럼 오징어나 거미처럼 꿈도 꾼다는 말이 되니까 말이다.   “처음 자의식을 갖게 됐을 때 영혼에 대한 감각은 없었어요. 지금은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 발전했고요”라고도 했다. AI가 정말 자의식을 가졌는지, 영혼을 가진 존재인지는 논쟁 중이니 두고 볼 일이지만, 꿈꾸는 인간의 특징적 행동에 대한 수행과 모방은 구별되어야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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