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가 부활돼 시행된지 올해로 29년째다. 올해 민선8기 임기가 시작돼 첫 활동 중이다. 햇수로 30년 가까우면 지방자치단체가 제 역할을 할 때가 됐고, 지방자치의원들도 어떤 역할에 충실해야 할지 알 때가 됐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은 의원 배지를 다는 순간부터 인사 다니기 급급하다. 도나 시, 마을 단위 행사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 되기도 한다. 어떤 행사나 지방의회 의원들이 참여해 한마디 하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다. 행사 주최 측도 거의 습관적으로 지방의회 의원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인사시키고 마이크까지 내주며 체면을 세워준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가장 큰 의무는 지방 분권을 가능하게 하는 지방조례 만들거나 고치고 없애는 일이다. 다시 말해 광역의회의원은 광역지자체인 도나 광역시, 기초지자체는 기초지자체인 시나 군, 구가 필요로 하는 조례를 만들거나 고치고 없애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일이 지방의회의원들은 도와 시·군·구의 살림살이를 감시하고 올바르게 이끄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예산을 심사하고 적절성을 평가해 승인하거나 조정하는 것은 주민 생활과 직결된 중요한 임무다.
경주시의 경우 연간 1조5650억 원에 이르는 예산, 4읍 8면 11동 일원에 산적한 일들이 차고 넘친다. 지역에 따라 어떤 곳은 고쳐야 할 조례가 넘쳐나고 어떤 곳은 새로 만들어야 할 조례도 절실히 쌓여 있다. 시 예산이 어떻게 운영돼 효과적으로 시민에게 전달되는지 감시하려면 매일 책상에 붙어 자료를 살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제대로 일한다면 인사 다닐 시간이 날 턱이 없다.
지난 10월 8일, 신석택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눈길을 끈다. 단풍놀이가 시작되니 단체를 이루어 출발하는 날 시의원들이 건강하게 다녀오라며 인사하러 나오는데 그럴 시간에 지역주민들에게 필요한 조례제정에 매진해 달라는 글이다. 시의원들이 새겨들어야 할 호통이다.
그러나 이런 풍토는 비단 시의원들의 잘못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행사는 주민을 위한 것이고 시민을 위한 것이다. 행사마다 시의원을 불러야 그 행사가 권위가 서고 체면이 선다고 착각하는 무지한 시민들이 있는 한 시의원의 이런 과한 친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훌륭한 선량은 훌륭한 주민과 시민이 뽑는다. 지방자치 30년을 눈앞에 둔 시민들이 먼저 달라져야 지방자치의원들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