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마우스피스’와 뮤지컬 원작 영화 ‘틱, 틱...붐!’. 이 두 개의 작품과 창작자의 이야기를 다룬 많은 이야기들에서 다루고 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창작자 본인의 삶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난 민감한 사건들이 이야기의 소재로 쓰이는 경우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가에 대한 주제가 언급된다는 것이다.
‘마우스피스’는 메타극(연극 자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연극으로 작품과 인생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반연극)의 형식을 띄고 있다. 40대 중반의 여성 희곡 작가 리비는 가난과 학대 속에서 살고 있는 데클란이라는 한 어린 소년에게서 영감을 받아 공연을 올리지만,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과 데클란이 살고있는 불편한 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틱, 틱 붐(tick, tick...Boom!)’의 주인공인 존은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는 29세 남성이다. 그의 여자친구 수잔은 자신보다 창작활동을 더 중요시하는 존에게 상처받고, 싸우는 도중 “너 지금 이 순간에도 이걸 어떻게 노래로 만들까 생각하는 중이지?”라고 말한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나에게 있어서 민감한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했다는 생각에 상처받아 창작이라는 행위 자체를 원망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 나는 연기를 하고 있고 우리 예-술하는 인간들은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아픔일지라도 그것을 말하고 싶어 한다.
작가가 아닌 배우들에게도 윤리적인 딜레마가 종종 찾아온다. 몇 년 전 연기를 가르쳤던 한 선생님이 우리에게 조심스레 했던 이야기가 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장에서 우는 도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걸 잘 기억해뒀다가 연기할 때 써먹어야지’ 분명 진심으로 슬프고 마음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이 마음을 기억해야지 하는 생각과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운 두 가지 마음의 공존.
나 또한 크게 다를 것 없다. 어찌 보면 이건 배우로서 욕심이 있다는 반증이기에 좋은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순수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없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든다. 늘 마음 한켠에 가지고 있는 죄책감이다.
인생뿐만 아니라 영화나 연극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극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배우들을 보며 나라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런 나 자신이 싫어 마음을 비우려 애써봐도 늘 있는 그대로를 느끼는 관객으로 존재한다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인생 작품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쉽사리 말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야기 속 인물이 나와 비슷해 위로받거나 공감했던 작품, 미장센 혹은 음악이나 촬영 기법이 좋아 계속 찾아보게 되는 작품, 스토리가 탄탄하고 인물 관계가 디테일해서 몇 번씩 봤던 좋은 작품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연기와 창작을 업으로 삼고 점점 나이를 먹어갈수록 인생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말하기가 괜히 곤란하다.
예술 작품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 일은 종종 있다. 나 또한 한 작품으로 인해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작품에게 내 인생을 바꿀 여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 내가 주도권을 잡아보겠다는 욕심 때문일까. 다양한 세계와 가치관을 이해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저 업으로 삼은 이상 마냥 젖어들 수 없다는 말이다.
순수하게 바라볼 수 없다면 정확히 잘 바라볼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 작품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박슬기 씨 : 뮤지컬 배우.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다. 2017년 제11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대학생 여자연기상을 수상하고 대구시비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연수를 다녀왔다. 2020년 치러진 ‘미스 뮤지컬’ 경연에서 대상을 받았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광화문연가’, 베어 더 뮤지컬 외 다수에 출연했고 역시 뮤지컬 ‘앤ANNE’, ‘이상한 나라의 아빠’ 등에서 주연을 맡아 활약했다. 현재 음악 유튜브 ‘티키틱’과 협연 중이며 자신의 음악 유튜브 ‘seulki muto’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