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나 실사구시는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 긴박한 삶의 현장이야말로 진리와 정당성의 궁극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통찰이다. 이것은 일상에 대한 맹종이나 부당한 현실에의 묵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용주의는 사람을 세계의 자발적 창조자로 간주하며, 인간의 사회생활에서의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세계,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여기에 더해 실용주의는 교조와 공론, 소위 권위, 추상적인 지적 탐구와 이상적인 윤리와 책임의 강요가 아닌 우리 사회에서 괜찮고 바람직한 삶의 방식, 책임 윤리의 형성을 강조한다. 실용주의는 사회가 절대적인 원칙이 아닌 가능한 결과를 예측함으로써 사회혁신을 위한 행동의 기준을 도출하는 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무미건조한 지식분자의 공허한 이론이 아닌 삶으로부터 생성되는 경험, 지식, 실천이 가진 의미를 깨우쳐준다.
사람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철학의 근본문제로 삼는 실용주의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환경·사회·투명경영(ESG)의 기본 전제는 인간의 삶과 행동의 의미를 논하는 것이다. 철학의 목적 중 하나가 인간에 관한 이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욕구나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이라면 인간은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존의 권위 특히 절대적 진리를 제공한다는 제도적 장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 완성된 형태로 주어진 형이상학적 본질은 없고, 객관적인 대상 세계에 속한 영원불변의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용주의가 세계를 초월하는 관점을 비판하고 현실 중심적이며, 인류의 번영을 소중한 가치로 설정한 것처럼 SDGs와 ESG도 미래지향적인 관점을 중시하며 모든 것을 정해진 관념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는 관념론과 거리 두기를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 가치 창조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행동을 통한 변화’, 체계적 변화’만이 ‘진정한 전환(real transformation)’이 시작되고, 지역과 현장에서의 활동을 통하여 전 지구적 변화를 모색해 나가는 것이 SDGs 이행의 기본 관점이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보편적인 진리에 기초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여부가 핵심적인 논쟁대상이 아니다. 실용주의 철학의 기본 관점은 ‘세계는 진화하는 것(Charles Sanders Peirce)’, ‘인간의 창의적 활동’을 포함(제임스)하는 것, ‘초월적인 것이 아닌 인간의 경험을 포함하는 끊임없는 과정(듀이)’이다. 진리가 실천을 통해 증명되고 검증되어야 한다는 ‘실용주의 진리관’과 동일하게 SDGs 절대자와 고정된 체계를 부정한다. SDGs와 ESG는 현학적인 논리적 정합성을 추구하기보다는 모든 질문이나 문제를 열어놓고,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호소력 있는 실천과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선호한다. SDGs·ESG를 둘러싼 논의와 이행·실천은 실용주의와 많은 부분 결을 같이 한다.
SDGs·ESG도 인간의 창의적 노력과 자유의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세계에 대한 참여와 개선의 실천론이 성격을 가진다. SDGs·ESG의 핵심적인 정책과제는 ‘인간 중심적 발전(people-centered development)’이다. 인간 중심적 접근은 정의롭고, 살기 좋고, 포용적인 공동체의 건설과 빈곤 해결을 위한 보다 가치 있는 솔루션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자 일련의 과정과 방법들이다. 이것은 삶을 위한 자연지원시스템(the natural support systems)을 보호하는 ‘모두를 위한 포용적인 발전’ 과정과 양식의 추구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생태주의와 대립하지 않는다.
SDGs 5P(인간, 지구, 번영, 평화, 파트너십), ESG의 3요소(환경, 사회, 거버넌스)에서도 확인되듯이 효율과 만족의 극대화가 아닌 생태계와 사회 전체의 균형과 지속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인간 중심적 접근은 사회구조 속에 다양성이 촘촘히 짜여있고 유형과 무형의 문화적 유산과 활동들이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지는, 사람 중심의 안전하고 문화적으로 융성한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SDGs). 그리고 기업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 하에서 사회에 유용한 부가가치 및 고용창출과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행동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실현을 견인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촉구한다(ESG). 인간 중심 디자인 방법을 통한 가치 있는 해법 제안에는 적합성(Desirability), 실현 가능성(Feasibility), 지속성(Viability), 이 세 가지 관점들을 동시에 고려하여 도출한다.
실용주의는 ‘변화와 참여’를 중시하고 인간의 창의적 노력과 자유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일련의 의식과 행동을 촉진한다. 나아가 학습과 탐구는 개방적 사고, 참여적 의사결정을 통한 적용 가능한 정책 대안 모색, 나아가 자기 성찰성을 강화한다. 자기 성찰성은 나와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 합리적 비판에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SDGs와 ESG도 이슈가 다양하고, 상호 연계되어 있으며, 이행 과정에서 구체적인 지표를 통한 검증과 평가와 환류를 수반하기 때문에 계획 수립과 실행에서 학습과 탐구를 중시한다. SDGs·ESG는 이해관계자들의 토론을 통해 지식, 가치, 인식, 관점, 태도를 변화시키고, 집단적 맥락에서 ‘바람직한 것’과 ‘실현가능한 것’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공동의 행동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중시한다. 이처럼 SDGs·ESG에서 학습과 탐구 의지는 생성(生成)과 변화(變化)의 세계관(世界觀)으로서 미래(未來)를 향해 열린 실용주의 철학의 기본지향과 맞닿아 있다.
>>다음에 계속이창언 경주대 대학원 SDG·ESG 경영학과 교수, 경주대 SDGs·ESG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