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밀어(密語)는 죽어가던 양파도 되살린다. 부산 경상대학교 박경수 교수는 양파를 가지고 ‘문자 에너지 파동 실험’이란 걸 진행했다. ‘사랑해’라고 적은 컵과 ‘미워해’라고 적은 컵 안에 양파를 각각 키워봤다. 소위 긍정 에너지와 부정 에너지가 양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사랑해’라는 긍정 에너지를 보고(물론 양파에는 눈이 없지만) 자란 양파는 뿌리부터 건강했다. 반면에 하루 종일 ‘미워해’하는 문자를 보면서 자란 양파는 잔뿌리가 많이 나더니 며칠도 안 되어 썩기 시작하더란다. 이 실험으로 알 수 있는 결론은 선명하다. 말이나 문자의 힘은 양파를 살리기도 하고 반대로 죽이기도 할 정도로 지대하다는 사실이다.
양파가 한국말을 알아들어서 그런 결과가 도출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언어에는 분명 신기한 힘이 있나 보다. 과학적으로 검증이 안 될 뿐, 분명 무언가가 있지 않고서는 이런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나올 수는 없을 테니까.
혹시 ‘점메추’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점심 메뉴 추천’이란다. ‘어쩔티비’는 ‘어쩌라고? 그냥 티비나 봐’라는 말이다. ‘힝구리퐁퐁’은 이건 좀 복잡한데, 속상+서운+서럽+슬픔을 합친, 아무튼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낄 때 사용하는 용어다. 요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용어, 소위 잼민어의 몇 가지 예다. 멀쩡한 말을 왜 이유 없이 줄이는지, 발음도 어려운 외계어는 왜 계속 만들어내는지 도통 알 수는 없다. 요즘 애들이 문제인가? 잠시 시계를 1940년대로 되돌려 보자. A:“얘, 정숙이는 이번 니찌요비(일요일) 겟곤(결혼)한다는데 아주 스바라시(좋은)한 옷감이 만트라”B:“정숙이가 아바다(곰보)인데도 신랑이 오케(ok) 했다지?” A:“신랑이 호레루(반하다)한 게 아니라 정숙이가 호레루 했데” B:“나루호도(그렇구나) 새로운 뉴스(news)인데?” 김윤진의 『해방기 엄흥섭의 언어 인식과 공동체 구상』이라는 논문에 나온 한 대목이다. 소설가 엄흥섭이 길거리에서 여고생들의 대화를 채록한 거라는데 놀랍다. 신조어만 없다 뿐이지 일본어에 한자에다 영어(다른 자료에는 러시아어까지)를 혼용하고 있다. 대화를 녹취했던 엄흥섭도 (그 당시) 젊은이들의 언어생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요즘으로 치자면 “요새 젊은 것들, 말 참 이상하게 하네” 하는 식이다.
이해는 간다. 그 당시가 해방 직후인 1948년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면 말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남한에는 미군이, 북한에는 소련군이 주둔한 직후다. 영어, 일어, 러시아어가 뒤섞여 있는 그들의 대화는 당시 한국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언어는 살아 숨 쉬는 생물이고 계속 진화 중이기 때문이다.
요 며칠 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 한국어 노래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그날은 뉴욕시와 뉴욕 한국문화원,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 개최한 ‘코리아 가요제’가 열린 날. 어설픈 춤 동작과 함께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부르던 30대 미국 여성은 “자신은 H.O.T 세대라서 요즘 잘 나가는 가수나 그룹은 잘 모른다”고 했다. 옆에 있던 친구는 “K팝 가사는 건설적이고 긍정적인데 요즘 미국 팝엔 그런 게 없다”고 했다.
일본 도쿄에 있는 라면 가게에서는 홍보 이미지 밑에 ‘진차 우마이(チンチャうまい), 좃또 메푸타(ちょっとメプタ)’하는 식의 설명을 달았다고 한다. ‘진차’는 우리말 진짜의 일본식 발음이니까 진짜 맛있다는 의미고, ‘메푸타’도 맵다는 말이니까 라면이 조금 맵다는 뜻이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에 익숙한 ‘요즘’ 일본애들을 겨냥한 표기법이다.
온라인상에 활발한 한국과 한국어 열풍을 알아보려면 ‘영국 남자(Korean Englishman)’라는 사이트를 참고하면 된다. 구독자 수만 506만 명이고, 업로드한 영상 조회수가 자그마치 16억491만648회다.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 장면에서 한글을 ‘한굴’로, 한국어 어려워요를 ‘한국어 얼리여요’하고 삐뚤빼뚤 쓰고 있지만 한글과 한국문화에 대한 사랑은 무척 단단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요즘 말로 가슴이 마구마구 웅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