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지다                                           이정화 고요 그 상처에서 피가 번지어 물결 없이도 상어들이 몰리다 고독이 고압으로 흐르는 시퍼런 해연 흐름을 뜯으려는 흰 이빨은 무슨 악기일까 먼 데서 번지어 오는 생명 그 진동 잠시 모여 있다 돌연 흩어지는 지느러미들 -꽃, 현실의 신산을 건너게 하는 그 매혹의 이름 좋은 시는 어떤 소재나 감정을 그대로 반사시키는 거울이 아니다. 특히 사물시나 회화시가 그렇다. 새로운 시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 남들이 감지할 수 없는 새로운 미적 영역을 새로이 열어놓을 때 가능하다고 할 때, 시인은 대상이 되는 현상적 사실이나 사물을 상상력의 불꽃으로 점화시켜 제 나름의 빛깔과 향기를 발하며 타오르며 그 과정을 통하여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미적 구조물을 만들어낸다. 이정화 시인의 몇 편의 꽃시에서 역동적 상상력을 읽으면서 요즘 시단에서 드물게 보는 새로움과 시적 형성의 유연성을 본다. 이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경직된 관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시집 곳곳에서 예상하지 않는 엉뚱함이 완성을 향해 치달린다. 고독은 인간의 이 땅 삶을 증명하는 실존의 기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고독은 모든 인간 창조를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유형무형의 창조의 근원에는 고독이 자리잡고 있다. 고독의 심연에서 자신의 내면과 만날 때 비로소 새로움으로 넘쳐나는 한 줄의 시가 얻어진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고독이 고압으로 흐르는/시퍼런/해연”이라는 표현은 푸른 하늘 아래 살아가는 우리 삶에 대한 은유이다. 그러나 고독의 심연, “고요/그 상처에서” 번지는 피라는 부정성을 먹어버리는 상어(‘목련’)가 있기에 우리 삶은 살만하다. 시인은 목련을, 고독의 “흐름을 뜯으려는/흰 이빨”이라는 말로 더 선명하게 묘사한다. 놀라워라. 흰 이빨은 대지를 퉁기어 울리는 악기로 소리를 내어 생의 고독을 위무하고, “번지어 오는/생명/그 진동”을 대기에 퍼트리어 우리 삶의 신산을 생명으로 이끈다. 그러나 해연에 몰리는 상어의 지느러미들도 “잠시 모여 있다/돌연 흩어”진다. 개화의 순간은 의외로 길지 않은 것이다. 짧기에 오히려 우리 생을 더 긴장하게 한다. 사실 꽃나무에게 개화와 낙화의 순간은 피어난 꽃들이 몸을 울려 스스로를 피워내고, 한번 더 울려 떨어뜨려버리는 시간이 아닌가. 이 작품은 가뿐하고 날렵한 상상력으로 “고독이 고압으로 흐르는” 우리 존재들의 시간을 상어떼와 이빨이라는 싱그럽고 새로운 면모로 잡아냄으로써 존재에게 주는 짧기에 오히려 선명한 꽃의 소슬한 기쁨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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