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 동벽 440m 구간이 실체를 드러냈다. 일제강점기 지적도와 잔존하는 성벽 및 발굴 자료를 종합해 추산한 동벽 전체 길이가 약 624m인 것을 감안하면 3분의 2가 넘는 규모가 발굴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 28일 한국문화재재단과 경주시에 따르면 2019년 8월부터 시행한 경주읍성 5구간에 대한 학술발굴조사 결과, 동벽 남단부 일부를 제외한 440m 정도의 동벽 실체 대부분이 드러났다. 동벽인 5구간은 경주읍성 범위 중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구간으로, 성벽의 면석은 12단으로 제일 높다. 그 높이는 약 2.2m 정도다. 경주읍성은 동벽 약 624m, 서벽 약 612m, 남벽 약 570m, 북벽 약 606m로, 총 길이는 2412m로 추산된다. 재단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 현종 3년(1012년)에 처음 토성을 쌓고, 고려 우왕 4년(1378년)에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는 경주읍성 문헌기록상의 개축 양상을 동벽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북벽은 동벽 아래 토성 흔적이 이어지지 않고 처음부터 석성으로 쌓은 것이 확인돼, 현재 읍성 범위로 파악되고 있는 개축된 석성의 범위와 평면 형태가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또 동벽 대부분은 한쪽 벽만 돌로 쌓는 ‘편축’ 방법으로 개축된 것도 확인됐다. 석성으로 개축 시 동벽쪽은 토성 외벽 쪽은 절개하고, 내벽쪽은 여러 겹의 흙으로 다져 쌓은 ‘토루’를 이용해 축조했다. 재단측은 또 북벽쪽은 바로 쌓아 올렸으나 벽석 축조방식에 있어서는 외벽만 석축으로 하고 내벽은 흙과 잡석으로 채우는 편축 방법은 동일한 양상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처음 석성으로 개축할 때 벽석은 동벽과 북벽에서 아래 3단 정도만 남아 있고, 그 위로는 조선초기와 조선후기에 보수된 성벽으로 확인된다. 보수된 성벽도 외벽만 석축으로 쌓는 편축 방법으로 축조됐다. 내탁부에 일정한 높이마다 석축열을 만들어 내부 판축토가 밀리는 현상을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벽과 북벽이 연결되는 성벽 모서리는 직각을 이루지 않고 둥글게 축조한 것도 확인됐다. 이는 경주읍내전도(1798년)의 도상에 표현된 직각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이 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체성벽에서 달아내어 축조한 성벽 방어시설인 치(雉)의 기단부도 동벽쪽 2개, 북벽쪽에서 1개가 확인됐다. 이번에 확인된 동벽쪽의 2개는 이미 발굴돼 복원된 동문 북편의 첫 번째 치 다음의 것이다. 이로써 동문 북편에 존재했던 3개 치의 위치가 모두 정확히 확인됐다. 치의 간격은 거의 75m로 나타났다. 3개 치 중 가운데 치에서는 팔부중상 면석 3매가 기단석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이 지난 2020년 2월 알려진 바 있다. 북벽의 치는 북벽의 동편 첫 번째 치다. 지금까지 확인된 치 모두 일제강점기 지적도에 표시된 위치와 일치하고 있다. 또 동벽과 북벽이 연결되는 모서리 부분에는 이를 감싸는 평면 말발굽 모양의 길이 10m, 너비 10m 규모의 기초석 범위가 확인됐다. 재단은 이를 모서리에 있는 치인 성우(城隅)로 판단했다. 일제강점기 지적도에는 이에 대한 표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이번 경주읍성 5구간에 대한 발굴결과와 성과는 향후 경주시의 동문(向日門) 북편의 동벽과 북벽에 대한 복원·정비 시 읍성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진행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단은 29일 경주읍성 현장 사무실에서 공개설명회를 열고 이번 발굴조사 결과와 성과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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