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녹음이 짙어지더니 어느덧 황금물결을 맞이하기 위해 연두빛을 띄기 시작했다. 창밖 논의 색깔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기에 아줌마는 또 ‘논멍’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두 번의 태풍을 무사히 견디고 이겨낸 논의 벼들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길 바라며…
어릴 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특권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제 기성세대, 중년, 아줌마 소리가 익숙한 나이가 되었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고사하고 내가 진짜 어른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무엇 하나 완벽하게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하나씩 알아간다는 것이 이제 내가 철이 드는 것인가 싶을 정도다.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학교를 들어갈 나이가 되어 신년 새해 소원에 “받아쓰기 100점 받게 해주세요”라고 적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낸 아이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일상이 마스크와 동행하고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반 가린 지 삼 년째다. 경주 시내 아이들을 전문 상담하는 곳은, 대기가 한두 달이 기본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가 생소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통 부모는 아이들에게 완벽한 존재이며 세상의 전부로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모의 빈틈을 하나씩 알아간다. 그래서 나는, 아줌마는 일찍 인정하고 고백했다. “엄마는 물건 잘 못 찾아. 네 물건은 네가 찾아. 중요한 거면 보물창고에 잘 넣어두고” “엄마도 모르겠는데, 같이 검색해볼까?” “종이접기나 블록 조립은 아빠가 잘하는데”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서부터 엄마의 고백이 하나둘 늘어났다. 아이들은 그걸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세 아이가 서로 잘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도 일찍 인정했다. 잘하는 것을 해주고 부족한 것은 서로가 메꿔주는 식이다. 첫째는 일찍 일어나서 이불을 개면 아침잠이 많은 둘째는 식사 후 식탁을 깔끔히 닦고 막내는 베개를 정리하는 식이다. 엄마의 빈틈 고백이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도와주는 형식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엄마가 되어 아이가 크는 동안에 엄마도 성장한다는 말을 이때 처음 실감했다. 이십 대에 남들에게 빈틈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센 척하고, 악바리처럼 모든 일에 매달렸었다. 그리고 같이 작업하는 선후배들 앞에서 언제나 당당했다. 결과론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작업을 한다는 것이 많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매번 긴장해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서른이 되면서 자연스레 주변정리를 했다.
삼십 대 중후반이 되어 편안해진 삶을 살게 된 것이 바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함에서 시작되었음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십 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아이들 앞에서 엄마는 언제나 불완전한 존재임을 자청했다. 아이들에게도 ‘모르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모르는 데 아는 척 하는 게 창피한 일이다’라며 마치 주문처럼 자주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쭈뼛쭈뼛했던 아이들이 주문에 익숙해지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그것이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잘하는 사람이 특히 가족이라면, 어린 나이에 쉽지 않았을 텐데 인정하고 나니 아이들은 한 뼘 더 자란 것 같았다.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워간다. 이래서 어른들이 아이를 키워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했구나 싶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많이 부족한 엄마다. ‘아이들의 사춘기를 갱년기로 무마시키겠지’하는 배짱으로 세 아이에게 “갱년기와 사춘기랑 붙으면 누가 이기는지 검색해봐라. 그리고 덤벼!” 하고 말하는 이상한 엄마이기도 하다. 빈틈 많은 엄마지만 세 아이를 무척 사랑하는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