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대기와 호미
권박
따듯해요 마음껏 따뜻해서
포대기에 업혀 있지 않으면 마음껏 울었던가 봐요
엄마는 그때의 엄마는 산후우울증이란 게 뭔지도 몰랐던 그때의 엄마는 아이 낳자마자 농사를 지었다던 늘 호미 쥐고 땅을 파고 흙을 덮던 할머니가 생각나서
참았대요 마음껏 견뎠대요
아마존에서 포대기, 호미가 그렇게 팔린대
엄마 나는 싫어 그런 인생 왜 사는지 몰라
업힌 나는 지금도 그때처럼 업혀 있는 나는
엄마 나는 그래 말하면 엄마는 그래요
편리하고 실용적인 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래 말해요
템플스테이에 와서 밥 한술 반찬 한 입 먹는데
차를 마시듯 걷다가 걷다가 걷듯이 참선하는데
엄마
나의 화두는 엄마-되기
엄마처럼 내려놓기
내려놓기 내려놓기
불편을 안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자주 아름답고 싶은 나는 될 수 있을까요
-‘엄마-되기’와 ‘아름답고 싶은 나’ 사이에 선 여성 주체
미국의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때아닌 ‘포대기’와 ‘호미’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포대기는 등에 업힌 아기가 엄마(혹은 아빠)와 애정 어린 신체접촉을 가능하게 하고, 호미는 밭을 매고 돌을 골라내는 데 더없이 소중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에서 ‘포대기’와 ‘호미’는 오래전부터 여성 수난의 대명사가 아니었던가. 우리네 어머니들은 아기를 업고서 밭을 매는, 육아와 노동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던가.
요즘 시단에서 가장 뜨거운 시인 중의 하나인 권박은 바로 이 점에서 오늘 여성의 정체성을 문제 삼는다. 대화체로 시를 한껏 살려서 말이다. 1연은 시인이 가상 청자를 향해서 내뱉는 ‘봐요’ ‘대요’ 형식의 대화다. 여기서는 나의 체험을 말하는데 ‘마음껏’이라는 반어를 통하여 대대로 이어져 온 여성의 수난을 그린다. 포대기에 업혀 있으면 ‘마음껏’(더할 나위 없이) 따뜻했다. 포대기에서 분리되기라도 하면 ‘마음껏’(기를 쓰고) 울었다. 엄마들은 아기를 업고 호미로 하는 노동을 ‘마음껏’(이를 악물고) 견뎠다. 산후우울증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시달렸던 여성 주체들의 이야기다.
2연부터는 엄마와 나의 대화 형식으로 시가 구성된다. 모녀는 지금 템플스테이에 와서 대화를 나눈다. 엄마가 먼저 ‘아마존’ 이야기를 꺼내자 아직도 수난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그때처럼 업혀 있는”) 내가 “엄마 나는 싫어 그런 인생 왜 사는지 몰라”(2연) 하고, 엄마는 또 “편리하고 실용적인 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3연) 느긋이 충고한다. 두 사람은 노동과 즐김의 경계를 함께한다. “차를 마시듯 걷다가 걷다가 걷듯이 참선”한다. 엄마에게는 그동안 걷는 것만 있었지, 햇빛을 만끽하며 사람답게 걷는 것은 꿈도 못 꾼 현실. 둘은 차 마시듯 음미하며 걷고 참선도 한다. 그래 걷는 것도 휴식이고 즐김이고 생각도 되는구나, 엄마는 느낀다. 딸이 마침내 어렵게 입을 연다. “엄마” “나의 화두는” 말이에요, 우리 사회의 거대담론인 “엄마-되기”이면서, “엄마처럼 내려놓기” 더 정확히 말할까요, 육아와 노동의 수난일랑 “내려놓기”랍니다. 더 이상 그런 “불편을 안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님 “자주 아름답고 싶은 나”가 “될 수 있을까요.” 이 말을 전한다. 곁의 엄마에게. 아니 이 땅이 모든 남성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이 시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남녀불평등을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보다 훨씬 더 설득력을 갖추어 짚어주는 여성주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