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남 이조 최부자 개무덤 설화는“-최가들 한데 중시조가 어데 갔다 오다가 술이 취해가지고 산길에 드러눕는디. 불이 나서가지고, 사람한테로 불이 붙어 오니까네, _중략_ 같이 간 개가 몸을 물에 젖시고, 불을 끄고 개가 죽어버렸다. 경상도 최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개를 묻어 놓고, 일년에 제사를 지내 준다던가 어쩐다던가” <한국구비문학대계, 6-1, 569쪽, 채록한 원본입니다.> 개무덤에 대한 설화는 여러 형태로 전국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개무덤의 설화 중에서 경주 최씨 개무덤, 최부자 개무덤, 경주 내남 이조 개무덤 등 경주 최씨와 관련된 것이 매우 많다. 최부자는 정무공(貞武公) 잠와(潛窩) 최진립(崔震立, 1568~1636)부터 3남 동량(東亮)으로 이어져 최준까지 12대 300년 동안의 만석꾼을 말한다. 최부자는 가거10훈(家居十訓), 6훈(六訓), 6연(六然)을 실천하여 부자이면서 존경 받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이며, 또 12대 마지막 만석꾼 최준은 교육사업, 독립운동, 국책보상운동 등에 많은 재산을 기부하였다. 마지막 남은 재산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미래를 위한 인재양성을 위해 대구대학교(현 영남대학교) 설립기금으로 내놓았다. 미래를 걱정했던 최부자는 존경받는 부자로서 시대적 귀감 대상으로 충분했다. 최부자는 부의 축적에도 가난한 이웃을 생각했고, 이룬 부를 함께 나누는 실행으로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귀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최부자의 부를 존경했고, 백성들의 시대적 바람과 관심이 개무덤의 설화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 경주 최부자의 이야기이다. 경주 최부자 개무덤 설화의 무대는 1대 최부자인 입향조 정무공(貞武公) 잠와(潛窩) 최진립(崔震立)에서 7대 최부자 최언경까지 살았고, 지금도 혈손들이 살고 있는 내남면 이조리(가암佳巖)이다. 현재도 마을 뒷쪽에는 흙으로 만든 커다란 무덤이 있고, 꼭대기에는 천작도(天作棹)란 큰 돌 돛대를 상징하는 장대한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조에 살고 있는 최씨 혈족들을 이조최씨, 가암최씨, 개무덤 최씨, 갬디미 최씨라고 불렀다. 개무덤의 설화는 12대 만석꾼 최부자의 부가 시작된 내남 이조 최씨 혈족들에게도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온 이야기였다. 그러나 19세기 경주지역이 노론과 서론, 남인으로 나누어진 당파의 소용돌이에 소극적인 대응을 한 이조 최씨를 개무덤에 빗대어 비하하는 표현으로 견분(犬墳)최씨, 가최(佳崔)등으로 낮추어 부르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비하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응 논리가 미역내, 별내, 박달천의 세 거랑이 모인다는 ‘갯모듬’(浦會)이란 어원이 변화되어 개무덤이 되었다는 설과, 신라 진성여왕의 간부(姦夫)인 각간 김위홍의 무덤으로 그의 행실을 빗대어 개무덤이라 불렀다는 설 등이다. 400년이란 세월 동안 구전되어온 설화의 원형이 와전되어 경주 최부자 개무덤이 실체가 없는 설화가 되어, 오늘날의 학계에서 지워지고 있다. 개무덤에 관한 옛 기록은 1651년(효종 2, 신묘)에 3대 최부자인 최국선의 6형제 재산 상속 문서인 ‘최국선동생남매화회문기(崔國璿 同生 男妹 和會文記, 1651)’와 전답 소송에 관한 고문서, 동경통지(東京通志 卷六 三十七) 등에 전답의 위치 표시에 개무덤(견분, 犬墳)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또 경주 남쪽 지역인 부남(府南)지역의 전답을 지역별로 구분하는 기준점이 개무덤(견분, 犬墳)이었다. 내남 이조 최부자 개무덤의 설화는 그 시대의 여러 고문헌과 혈족들의 구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조 개무덤 이야기는 착한 부자로 시대의 귀감이 된 최부자의 스토리텔링이다. 내남면 이조의 입향조인 정무공 잠와 최진립의 청백리와 12대 300년을 이어온 최부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즈, 정무공 잠와 최진립의 불천위 제사 후에 종에게도 지내는 제사, 하늘 아래 모든 백성은 동일하다는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 등은 갬디미(개무덤) 최씨의 가문에서 이어온 일들이며, 개무덤 설화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부자의 귀감이 ‘경주 최부자 개무덤’이야기로 구전된 설화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인 동반성장, 사회공헌, 창조적 자본주의와 잘 부합된 부자 스토리텔링이다. 12대 만석꾼 최부자의 내남 이조 개무덤 설화를 우리는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이 시대인의 의무이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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