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호텔에서 식사하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우리나라와는 다른 풍경이 인상 깊게 남았다.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 풍경은 집보다 높게 솟은 나무들과 마치 숲처럼 보이는 주택단지였다. 동시에 유럽 출장길에서 비행기로 내려다본 독일 도시의 모습도 생각났다. 숲속의 도시, 건물들보다 나무가 더 많아 보였고 도시 안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숲속에 도시가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 도시를 향한 부러움과 우리 도시의 안타까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친환경 도시를 언급할 때마다 나오는 ‘기후변화’라는 용어는 이제 그 시간의 촉박함과 마땅치 않은 대안들로 인해 ‘기후위기’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기후위기의 대표적 사례로 얼마 전 수도권은 기록적인 폭우로 도심지가 침수되고 사상자까지 발생하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여름철 폭염 문제는 단골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폭염으로 온열질환자 발생이 증가하고 있고 사망자도 늘어나고 있다. 급기야 폭염은 법정 재난으로 관리되고 있다. 사거리 건널목마다 그늘막이 설치되는 등 대응책들이 마련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왜냐면 도시의 온도를 낮추는 직접적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의 온도를 낮추는 해법은 간단하다.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숲과 연계된 바람길을 만드는 것이다.   대구는 뜨거운 공기가 순환하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내부에 갇히는 분지지형으로 여름철이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아직도 그 유명세가 있어 폭염 축제까지 개최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구시는 적극적인 도시 녹화사업을 시행하여 폭염도시의 오명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도시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하는 녹화사업이 큰 효과를 보인 것이다. 1km 당 가로수를 살펴보면 서울이 35그루, 부산이 42그루인데, 대구는 76그루로 월등한 수치다. 가로수 식재로 인한 효과로 대구의 열대야 일수는 대구보다 위도 상으로 북쪽에 있는 서울의 절반도 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대구가 아닌 인근의 영천과 경주가 여름철 전국 최고기온 기록을 경쟁하듯 다투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경주에 숲과 나무를 조성할 수 있을까? 보행로를 넓혀 촘촘한 가로수 심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무를 차도에 심을 수는 없다. 대구의 사례처럼 두 줄로 된 가로수가 주는 효과는 다양하다. 길을 걷는 보행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 녹색의 나무 통로가 주는 시각적 시원함, 그리고 나무가 만드는 자연 그늘 효과까지 있다. 물론 보행로를 넓히고 이중식재를 할 수 있는 거리가 많지 않을 것이고 이미 개발된 시가지 내부를 녹화하는 방안도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조성된 공원 내부에 식재를 늘리거나 아스팔트로 포장된 주차장을 투수형(透水形) 포장으로 바꾸고 그늘로 조성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찬 공기를 도시 내부로 끌어오기 위한 바람길을 구축해야 한다. 위성지도를 보면 경주도심 남쪽에는 남산이라는 큰 자연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북측에 농지를 거쳐 월성, 인왕동 고분군, 대릉원, 봉황대로 이어지는 옅은 녹지 축이 형성되어 있다.   필자가 ‘옅은 녹지축’이라고 한 것은 바람길로 기능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남측의 대릉원과 월성 북서측의 고분 지역은 현재 잔디광장으로 관리되고 있다. 잔디와 같은 초지는 숲에 비해 열반사율이 낮아 뜨거운 기운을 담게 되고 수분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낮아서 바람길 효과를 얻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이곳들을 충분한 식재를 통해 숲으로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실제 신라시대 왕릉 주변은 나무를 심어 능원 공간을 조성하였다. 경주는 주변의 자연환경은 우수하지만 내부 도심지역은 대구 같은 대도시보다 열악한 상황이다. 나무를 키우고 숲을 만드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 도시를 그렇게 만드는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래 걸리고 어려운 길이라고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면 결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미래를 심어나가기 시작해야 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