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가위가 되면, 명절 차례 음식을 준비하다가 가족 간 갈등과 불화가 반복되어 사회적 문제가 되어왔다. 요즘은 가정마다 자체적으로 간소화하고 있지만, 상차림을 크게 해서 지내는 것을 가문의 자랑으로 여김으로써, 여전히 차례와 제사를 준비함에 있어서 변화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1801년 공노비 해방 후, 100여년은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민란의 시대였으며, 그 정점은 동학이 주창한 개벽세상(평등)을 위한 1894 동학농민혁명이었다. 그 해, 갑오개혁으로 사노비가 폐지되며,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철폐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제례의 제약 또한 없어져, 점점 화려하게 지내오며 오늘에 이르렀다. 불가나 선가의 제례형식도 있지만, 음식을 차리고, 신위를 모시고, 조상님이 찾아와 흠향한다고 믿으며 유교식 제례를 행함이 오랜 관습이 되어왔다. 이제 그 관습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변화를 우리의 동학사상에서 찾아 시대에 부응하는 미래지향적 새로운 제례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니, 제사와 차례를 지낼 때 정성스레 준비한 맑은 청수 한 그릇을 모셔 놓고, 조상과 부모님의 은덕을 기리는 것은 전혀 부족함이 없으니, 허례허식을 떨쳐버리자”고 제시한 아름다운 의례가 있었다. 해월 최시형선생의 “마음을 다한 청수 한 그릇의 제례법”(1875년)이 그것이다. <그림참조> 경제적 이유라기보다는 형식적인 제사가 아닌,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동학농민혁명 후, 해월 최시형은 1897년 4월 5일 스승 수운의 득도일을 기념하며, 조상의 위패를 벽에 기대는 향벽설위를 하지 말고, 자신의 앞쪽을 향하는 향아설위를 하라고 제시하셨다. 향아설위의 이해를 위해서는 수운 최제우의 동학사상인 혼원지일기(渾元之一氣)를 먼저 이해해야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코스모스(Cosmos)의 세계를 초월과 내재, 개체와 전체, 인과성과 초인과성, 불연과 기연, 유위와 무위의 이원적 대립관계가 아닌,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생성적 관계로 보는 것이다. 또한, 수운의 시천주 사상은 모든 사람 각자 몸(내면)에 ᄒᆞ늘님(용담유사 인용)이 모셔져 있는 존엄하고, 신성한 주체적 인격체로 설명되니 결국, 우주적 생명체로서 나의 생명은 조상의 영혼과 하나의 기로 연결되어있다는 철학사상이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몸에 ᄒᆞ늘님이 모셔져(시천주) 있으니, 조상의 혼백 또한 내 마음속에 모셔져 있다는 것이 동학의 가르침이요, 이것이 해월 선생님이 말씀한 향아설위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제사를 받드는 것은 마음을 다한 청수 한 그릇으로도 충분하니, 조상과 부모의 혈기와 정신이 남아있는 나를 향해 평상시 식사하듯 자신을 위해 베풀고(향아설위), 선조가 남기신 교훈과 말씀을 기려야 한다”고 하셨다. <그림참조> 향벽 또는 향아라는 위(位)의 공간적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옛 조상들의 과업과 조상의 덕으로 미래를 복 받겠다는 생각 말고, 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도하고, 지극한 정성을 다하며, 제례를 통해서 나의 몸과 마음속의 ᄒᆞ늘님께 고(告)하는 것이다. 우리 고유의 위대한 정신문화인 동학사상의 최고 절정인 것이다. 올해부턴, 간소한 상차림과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향아설위 제례법을 각가정에서 행해보기바란다. “경주, 동학의 향아설위로 대한민국의 제례문화를 새롭게 바꿔 나가고있다”란 기사가 뉴스, 신문과 포털사이트에 소개되기를 바라며, 그 시작이 동학의 발상지인 경주였으면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