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의 보존과 개발. 두 개의 상충되는 가치 속에서 합리적인 복원·정비 방안을 모색하는 학술대회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반면 신라왕경 핵심유적 정비·복원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유산협약에 따른 엄격한 기준 적용으로 향후 사업 추진에 제약이 더욱 더 따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세계유산의 복원과 관련해 ‘추측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복원은 멈춰야 한다’고 세계유산 운영지침에서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명확한 고증 없이 세계유산을 복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ICOMOS-KOREA(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와 지난달 25일, 26일 경주 힐튼호텔에서 ‘세계유산 신라왕경 보호·관리에 대한 5가지(5Cs) 접근’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기조연설은 송인호 ICOMOS한국위원회 위원장이 ‘세계유산협약과 5Cs, 지속가능한 유산 보존’을 주제로 발표했다.
송인호 위원장은 “신라왕경특별법에 준거해 활력있는 역사문화도시를 조성하려는 지자체의 의지와 일부 국내학계의 동의를 동력으로 유산의 복원과 정비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신라왕경”이라며 “반면 세계유산협약과 운영지침에 따라 완전한 증거와 고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복원이 승인될 수 없는 경주역사유적지구 사이에는 간격과 충돌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계유산과 국가유산의 범주와 보존철학과 원칙을 정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국가유산이자 세계유산을 포함하고 있는 신라왕경은 이를 통합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 조율할 수 있는 선도적인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신라왕경을 포함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각국의 세계유산은 협약에 준거해 보호돼야 한다”는 송 위원장은 이를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설정한 전략 목표인 ‘5Cs’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5Cs’는 세계유산 협약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개발한 5가지 전략 목표다. 신뢰성(Credibility), 보존(Conservation), 역량구축(Capacity-Building), 소통(Communication), 공동체(Community)를 뜻한다. 송 위원장은 “세계유산의 지속가능한 보존을 위해 ‘5Cs’를 실행할 때는 유산의 보호와 충돌하는 행위가 발생하거나 결과적으로 유산의 가치를 훼손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면 방향과 실천목표가 잘못된 것”이라며 “가치 중심의 유산 보호가 지속가능한 유산 보존의 기본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송 위원장의 이날 기조연설은 경주역사유적지구의 역사적, 미적, 학술적 탁월한 가치를 강조하면서 지속가능한 유산 보존에 방점을 찍었다.
기조연설에 이어 김수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는 ‘세계유산 신라왕경의 신뢰성, 확인된 가치의 유지와 향상’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세계유산의 훼손 위협요인에 대한 설명과 함께 복원기준 마련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먼저 세계유산의 가치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유구복원·자연재해·오버투어리즘에 의한 가치 훼손을 들었다. 특히 유구 복원에 따른 가치 훼손에 대해 “신라왕경은 보호관리제도가 체계적으로 마련돼 다른 유적에 비해 보존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면서 “하지만 유산의 정비·복원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진정성 훼손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계유산 운영지침 상 추정에 의한 복원을 금지하고 있는데도 복원과 관련한 논의가 지속되는 이유는 그 기준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김 교수는 “세계유산과 관련해 복원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책적 차원에서 복원, 재건, 재현 등 복원과 관련된 용어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그 이후에 각각의 행위별로 필요조건을 정리해 복원 등의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추진에 제약 우려 이번 학술대회는 문화재청이 지난 4월 새롭게 마련한 세계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 종합계획의 시행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세계유산 모니터링 강화, 등재에서 보존관리 중심 등 세계유산협약 이행의 변화기조에 따라 향후 세계유산의 복원·정비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세계유산의 보존관리를 위해 추정 복원을 금지해야 하는 세계유산 운영지침이 보다 강조된 것으로 향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실제 지난 2019년 경주시가 추진하려던 동궁과월지 서편 복원사업이 세계유산센터의 반대로 중단된 바 있다. 당시 세계유산센터는 추측에 의한 복원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경주지역 한 문화재 관계자는 “서양의 석조문화재와 달리 목조 유적이 대부분인 국내 세계유산의 복원을 위한 고증자료가 거의 없어 신라왕경의 복원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며 “복원 사업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실제 가능한 사업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추진해 천년고도의 위상을 높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먼저 기조강연 ‘세계유산협약과 5Cs, 지속 가능한 유산 보존’(송인호, ICOMOS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시작으로 △세계유산 신라왕경의 신뢰성, 확인된 가치의 유지와 향상’(김수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보존과 장소성, 유산군으로서의 신라왕경의 보존’(이수정, 유네스코 세계유산국제해석설명센터) △‘신라왕경과 국제지침, 그리고 그 이행에 대한 역량구축’(이나연, 유네스코 세계유산국제해석설명센터) △‘발굴조사와 소통, 이해관계자와의 조율’(김경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세계유산 신라왕경의 유산화 과정에 있어 지역 공동체 참여에 대한 비판적 검토’(함예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김의연,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세계유산 신라왕경의 보존관리를 위한 유산영향평가’(김충호, 서울시립대) 등 6개의 주제발표가 25일, 26일 이틀간 이어졌다.
주제발표 후에는 한필원 한남대 교수를 좌장으로 전문가들 간 세계유산 신라왕경 보호·관리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학술대회는 세계유산 협약의 전략 목표(5Cs)를 통해 경주의 유산 보호·관리의 현재를 살피고, 유산의 보존과 개발이라는 상충되는 가치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에 대한 합리적인 관리 방식을 모색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