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은 뜨겁다. 몇 해 전 〈오빠는 강남스타일〉이라며 온 세상에 줄기차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온 가수 싸이(PSY)님이 흠뻑쇼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깜짝 공연 소식만큼이나 이슈도 뜨겁다. 요즘 날씨마냥 화끈한 이슈의 방점은 ‘쇼’보다 ‘흠뻑’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어느 방송에서 “공연 한 번에 물을, 그것도 식수(食水)로 300t을 사용한다”는 그의 인터뷰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이다. 가뭄으로 많은 농가가 고통을 겪는 요즘이라 “차라리 콘서트에 쓰일 물을 소양강에라도 뿌려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워터 밤(water bomb:물 축제) 공연이지만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틀리진 않다. 하지만 공연 내내 물 맞아가며(우비를 입어도 다 젖을 수준) 즐겼던 관객들의 입장은 이랬다. “이게 바로 공연이지!”, “코로나 셧다운에서 벗어난 게 이제 실감이 나요!” 다 맞는 말이다. 나는 이 논쟁에 불씨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흠뻑쇼에서 사방으로 튀는 물은 가수와 관객이 서로 소통하는 대화법”이라고. 우리나라에 공연 온 외국 가수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독특한 공연 문화로 ‘떼창’을 꼽는다. 떼창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다. 행동이나 목적을 공유한 다수나 무리라는 의미의 ‘떼’에다가 ‘창(唱)’이 결합된 형태다. 떼창은 왜 한국인만의 문화라고 할까? 함께 노래하는 게 어떻게 K-팝의 주요 키워드일 수 있나? 외국에서 공연하러 온 가수 빼고 자기들끼리 노래를 불러대기 때문이다. 또 있다. 보통 노래는 전주(前奏)로 시작되는데, 한국 관객들은 기타가 되었건 키보드가 되었건 그걸 ‘따라 부르기’ 때문이다. 기타 소리도 따라 한다고? 한두 사람이 그런다면 독특한 취미지만, 모두가 입으로 기타 소리(!)를 내고 있다면, 또한 자신의 노래를 함께 불러주는 관객을 보면서 가수나 세션이 행복의 눈물을 흘리거나 핸드폰으로 그 광경을 기록하고 있다면, 그것은 문화고 한국적인 것이기에 충분하다. 관객과의 구분이 없는 독특한 한국문화를 경험해본 가수들은 앞다투어 떼창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한국은 무대 위와 아래라는 구분이 애초부터 없다고 그들은 신기해한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건 인간의 본능이지만, 음악이 산업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전문 음악가가 무대를 독점해온 지 오래다. 그러니 한국의 떼창 문화가 더욱 매력적인 모양이다. 우리에게는 대동놀이나 강강술래처럼, 함께 어울려 흥(興)을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가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판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대학 축제로, 대동제로, 월드컵 거리 응원전으로 펼쳐진다. 싸이의 흠뻑쇼도 한국인 피 속에 흐르는 흥의 공명(共鳴) 현상일 수 있다는 말이다. 통상 공연은 무대 주체자의 계획과 실행의 결과물이다. 어느 지점에서 관객이 빵 터지고 어느 대목에서 감동받을지 미리 계산하고 연출한다. 근데 그게 한국에서는 안 먹힌다는 거다. 즉흥적이고 비예측적인 떼창이란 복병은 공연을 불확실성과 의외성의 영역으로 몰아간다. 수학적 냉철함과 상업적 뜨거움으로 결합된 공연장이 한순간에 혼돈의 놀이터로 바뀌는 것이다. 가수가 노래를 해도 좋고 관객이 노래를 하거나 이어가도 당연해진다. 이런 생경한 전개가 외국 가수들도 좋았던 모양이다. 떼창을 경험해 본 많은 연예인들이 너무 신난 축제였고 즐거웠으며 힐링이 되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고, 동료 가수들에게도 한국 공연을 적극 추천한다고 한다. 관객과 가수, 무대와 객석 그 경계가 해제되고 마치 거대한 난장으로 바뀌는 체험은 떼창만은 아닌 모양이다. 춘천의 어느 도로에서 좌회전하던 트럭에서 2000개의 맥주병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도로 한복판은 맥주 박스와 깨진 병들, 그 사이로 배어 나온 흰색 포말로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그런데 어디서들 왔는지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들더니 10여명의 사람들이 삽시간에 현장을 사고 이전처럼 복구를 해버렸다. 그런 다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갈 길을 가버린 것이다. 망연자실한 트럭 운전사와는 대조적으로 갓길에다 차를 세우고 뛰어오는 사람들, 병조각을 빗자루로 쓸어 담는 편의점 주인, 점심을 먹으러 가던 인근 주민들이 소위 각본에도 없는 흥 한 마당을 펼쳐 보였던 것이다. 이 또한 떼창 정신의 계승이라면 오글거릴지는 모르나 사실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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