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백마강 전투에서 패배한 천지천황이 몇 년 후 깊은 병에 들었다. 일부 신하들이 천지천황의 동생 대해인이 정치적 야욕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만일 그렇다면 천지천황의 사후 후계자가 될 대우(大友)황자에게 큰 위협이 될 터였다. 그래서 그의 속 마음을 떠보고 의심이 사실일 경우 후환을 제거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천지천황은 사람을 시켜 동생 대해인을 궁에 들어오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천황의 입궁 명령을 전하러 갔던 신하의 배신이 있었다. 그는 대해인의 비밀 정보망이었다. 대해인에게 황궁의 불길한 움직임을 이야기해주며 ‘조심하시라’고 은밀하게 경고하였다. 천지천황이 입궁한 동생 대해인에게 말했다. ‘내가 병이 심하다. 내가 죽고 나면 뒷일을 그대에게 맡기고자 한다’
미리 대책을 마련해 왔었지만 대해인은 소름이 돋았다. 설마 했던 형이 자신을 제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해인은 자신의 목을 조이려는 올가미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사전에 준비해온 답을 형에게 말했다.
‘저에게 뒷일을 맡긴다는 말씀은 당치 않습니다. 저 역시 이미 병이 들었습니다. 속세를 떠나 수도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그러하니 아들 대우황자에게 모든 정치를 맡기시기 바랍니다’
대해인은 형을 만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곧바로 머리를 깎았다. 아내와 아들, 몇몇의 종만을 거느리고 요시노(吉野)라는 곳으로 가 은거에 들어갔다.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천지천황은 동생이 순순히 은거에 들어가자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더 이상의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젊어서는 국정을 농락하던 권신을 어머니 천황의 면전에서 참수하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그토록 단호했던 그가 은거라는 미지근한 조치를 내린 것이었다. 병이 깊어 마음이 심약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신하들이 ‘범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땅을 치며 탄식하였다.
일생을 풍운 속에 살았던 천지천황이 4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후계 황위는 천지천황의 뜻에 따라 아들 대우황자에게 승계되었다. 그가 홍문(弘文)천황이다.
멀리 요시노 숲속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조카에게 황위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대해인이 요시노에서 조카 홍문천황의 동정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그에게 은밀한 정보가 전해져 왔다.
‘오미(近江) 조정에서 천지천황의 능을 만들 인부들에게 무기를 지참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단순히 능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닌 것같습니다. 큰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은거하고 있었으나 실상 대해인은 건곤일척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정보전이었다. 그의 정보망은 매우 효율적이었다. 천황이 그에게 입궁하라고 하자 즉각 천황의 의도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고, 능을 만들기 위한 사소한 군사들의 움직임까지 보고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정보는 약과였다.
그에게는 권력의 심부에 심어놓은 효율적인 정보망이 있었다. 그의 최고 정보망은 액전왕(額田王)과 십시(十市)라는 여인이었다. 대해인은 액전왕과의 사이에 십시라는 딸을 두었다. 자신의 딸 십시가 천지천황 사후 즉위한 홍문천황의 황후가 되었다. 대해인은 액전왕과 십시 모녀라는 여인부대를 홍문천황의 주위에 심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홍문천황의 동정이 대해인에게 광속으로 새어나고 있었다.
은거하고 있던 호랑이가 마침내 거병을 결단하였다. 수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홍문천황의 군사를 격파하였다. 패배한 홍문천황이 목을 매어 자결하자, 대해인의 부하들은 그의 목을 베어 대해인에게 바쳤다. 마침내 대해인이 승리하였다. 그가 천무(天武)천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