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천황은 백제 멸망기 백제인들에게 희망의 끈이었다. 또 그는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의 유민들이 의지했던 기둥이었다. 그러했던 그가 백제 망국 11년 후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 죽음을 몇 달 앞둔 671년 1월 하녀의 소생이었던 대우(大友)황자를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태정(太政)대신에 임명한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 병으로 쓰러져 사망하였다. 겨우 46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눈물가가 만들어졌다. 고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이해하기 위해 천무천황에 대한 눈물가인 151번가를 소개한다. 작자는 천지의 동생 대해인(大海人)의 여자에서 천지천황의 여인이 되었던 액전왕(額田王)이었다. 如是有乃/懷志/勢婆大御船泊之登/萬里人標結麻思乎 “이럴 수가 있음이여? / 눈물을 가슴에 묻고 눈물가를 만드나니. / 기세 있는 모습으로 대어선(大御船)이 정박하네.(돌아올 때 길을 잃지 말라고) / 만리의 사람들이 / 표를 묶으며 슬퍼하고 있구나” *대어선(大御船)은 천지천황의 영혼이 타고 저승바다를 갈 배를 말한다. 폭포가 쏟아지는 것처럼 직설적으로 슬픔을 표현한 작자의 역량이 놀랍기만 하다. 만엽집 속 수많은 작품 중 이와 같이 격한 구절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액전왕이 천지천황과 사적관계가 아니라면 이토록 격정적 작품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소 전문적이지만 첫 구절 ‘여시유(如是有)’라는 구절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럴 수가 있음이여?’라고 읽혀야 한다. 이 구절은 한반도어를 모르고서는 절대 구사할 수가 없는 표기일 것이다. 왜 한반도어라고 하지? 잠시 생각을 거듭하며 읽어 주시기 바란다. 이 고비를 넘겨야 향가에 대한 심원한 이해가 가능하기에 수고로움을 청하는 것이다. 如是有 - 이럴(是) 수가 있음(有) 이여(如)? / *是 : 이 시, 有 있다 유, 如 맞서다 여 몇 번 생각해 보아도 이 구절은 일본어로 읽히지 않고, 한반도어를 한자로 써놓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이 구절이 고대 한반도어로 읽혔다면 일본으로 건너간 향가는 일본어가 아니라 한반도어로 읽혔다는 말이 된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인문학을 뿌리째 뒤집어 놓을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사안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본 칼럼에서는 일단 보류하겠다. ‘만엽집은 한국어로 읽힌다’라는 생각을 저서와 칼럼을 통해 발표한 한국인이 있다. 이영희라는 교수이다. 그녀는 1931년 도쿄에서 태어나 귀국했다. 이화여고를 나온 뒤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한국일보에서 문화부장을 지내고 국회의원을 지낸 명사이기도 하다. 이후 그녀는 한일친선협회 부회장, 한일 비교문화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그녀는 조선일보에 ‘노래하는 역사’라는 만엽집 관련 기고문을 통해 우리나라에 만엽집을 대중화시키기도 했다. ‘만엽집은 한국어로 읽힌다’라는 그녀의 주장을 현재 일본과 한국의 학자들은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녀의 아이디어는 그리 쉽게 부정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의 탁견은 지속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사안이었다. 필자는 연구 과정에서 그녀를 찾아 만엽과 고대 한반도어의 관계에 대해 고견을 듣고자 했다. 그러나 필자의 뜻은 뜻하지 아니한 그녀의 사망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쉽게도 그녀는 2021년 사망했다. 본 칼럼을 통해 만엽집 연구사에 빛나는 등불 하나를 매달아 놓은 그녀의 업적을 기리며 명복을 빈다. 다시 만엽집 151번가로 돌아가 보자. 액전왕은 한반도어를 완벽히 구사하고 있는 여인임이 분명하다. 수많은 연구자들은 그녀를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의 후예로 확신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기록이 없을 뿐이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만엽집 151번가에서 네이티브가 아니면 사용하지 못할 능숙한 한반도어를 구사하고 있다. 이 사실은 액전왕의 한반도 관계설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그녀는 한반도인의 후예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한반도어로 노래를 만들었다. 또하나 천지천황의 죽음을 애도하는 눈물가를 감상해보자. 만엽집 153번가이다. 천지천황의 황후가 지은 작품이다.鯨魚取 淡海 乃海 乎 奧放 而榜 來 船 邊 附 而榜 來 船 奧津 加伊 痛 勿 波祢曾邊津加伊 痛 莫 波祢曾若草 乃 嬬 之 念 鳥立“고래와 물고기를 잡는 맑은 바다.그대께서 바다의 물굽이로 떠나가신다.노 저어 와 저승배가 물가에 닿았는가.노 저어 와 저승배가 물굽이 나루에 닿았는가.그대가 떠나가니 애통하여 우네.저승배가 물가 나루에 닿았는가.그대가 떠나가니 애통하여 우네.그대가 바다가 아니라 풀밭으로 가신다면 몸이 약한 나도 함께 갈 것을” 고대 전통 사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저승으로 간다고 믿었다. 위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믿음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천지천황의 영혼이 타고 갈 배가 나루에 닿으려 한다. 천황의 황후는 애통해 하며 눈물을 쏟고 있다. 저승 가는 길이 험한 바다를 건너가지 않고 평탄한 풀밭이라면 몸이 약한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탄식하고 있다. 천지천황은 여인들이 뿌린 눈물 강 나루에서 배를 타고 저승으로 건너 갔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