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질병이 전염·확산되는 상황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역사를 크게 뒤흔드는 수많은 변곡점들에 의해 만들어져왔고, 세계사는 질병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 코로나19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또한 그러하다. 과거 우리나라도 공포의 대상이었던 괴질(악질)이 오랫동안 반복해서 전염되어 마을마다 길거리에 원인 모를 죽음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해월 최시형 선생께서 동학을 펼쳐나가시던 때의 기록에도 “6월 하순부터 전국에 괴질이 크게 유행해 마을 전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찬 바람이 불자 겨우 가라앉았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팬데믹의 힘든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국가방역시스템이 없었던 시절, 해월 선생은 집집마다 다니며 “부엌이 깨끗해야 ᄒᆞ늘님께서 복을 주고 간다”고 하시며, 질병예방을 위한 위생 준칙을 다음과 같이 실천하게 하여 많은 동학 도인들의 집은 괴질이 피해 갔다고 하니, 당시 가장 효과적인 K-방역이었던 것이다. <동학 웹툰 삽화>1. 묵은 밥을 새 밥에 섞지 말고, 묵은 음식은 새로 끓여서 먹도록 하라.2. 침을 아무 곳에나 뱉지 말며, 대변을 본 뒤에는 땅에 묻고 가라.3.가신 물은 아무 곳에나 버리지 말라.4. 집안을 하루 두 번씩 청결히 닦도록 하라. (1886년)“목욕을 자주 하며, 항상 몸을 청결히 하라” 등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위생수칙이지만, 당시 “동학을 하면 전염병도 침범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나갔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동학에 입도했다고 한다. 해월 선생이 전라도에 처음 간 것은 국가의 외교적 위기 상황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1884년 갑신정변이 있은 해다. 훗날 동학 장군으로 활약했던 훌륭한 지도자 김개남, 손화중, 김덕명, 전봉준과 동학의 최고 리더 해월 선생과의 만남에 의해 그들 모두 동학에 입도해 전국적 조직으로 더욱 확대돼 나갔다. 이와 더불어 민중을 깨우치는 순 한글 가사(8수) 용담유사와 동경대전이 해월 선생과 동학 도인들에 의해 계속 발행 보급돼 민중들의 가슴속 깊이 전해졌고, 거대 조직을 컨트롤할 실천윤리인 임사실천십개조(1891년)를 제시하며, 포접제를 다져나갔다.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서 동학 세력이 크게 늘어나자 동학은 유교와 다른 이념을 가진 이단으로 몰아, 유생들과 관원들의 탄압도 점점 심해졌다. 30년 이상 탄압돼왔는데, 급기야 지방 수령들은 동학도인들의 재물을 빼앗고, 집을 불태워 도인들이 떠돌이 신세가 되거나,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외세의 압력과 부정부패로 인해 조선왕조가 해체기에 접어들어 기존의 질서는 무너지고 있던 암울한 시기에,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대안으로 민중과 함께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실천을 통한 개벽세상을 꿈꾸며, 보은집회와 1894년 동학농민혁명으로 전 국민에 의한 사회 대개혁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오늘의 우리는 해월 선생의 삼경 사상 ‘敬天, 敬人, 敬物’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통해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지구 과열화, 식량위기와 팬데믹의 질병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슬기와 지혜를 동학사상에서 재발견해 인류의 생존, 번영과 이상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동학은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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