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3.1만세운동 103주년 되는 해다. 동학 발상지 경주가 3.1 운동을 낳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 윤봉길 의사 역시 동학의 훈도를 받고 자란 인물들이다.
3.1 운동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돼야 할 충분한 가치를 지닌 독립을 향한 민중들의 피맺힌 숭고한 항거였기에 필자는 이하 ‘3.1만세혁명’으로 칭한다.
3.1 만세혁명을 이야기하면 누구나 유관순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그래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민족대표 33인의 대표 손병희 선생이 있다.
손병희 선생은 충북 청원의 평범한 가정에서 서자로 태어나 21세 때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고, 누구나 평등하게 대접한다’는 말을 듣고 동학에 입도해 14년간 해월 최시형을 스승으로 모셨다.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지휘했고, 25년 후 동학의 최고 리더로서 3.1만세혁명을 이끈 위인이었다.
국운을 다한 조선의 보국안민과 척왜양을 위해 수운은 해월에게 고비원주를 명했고, 해월 최시형에 의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동학의 도를 이어받은 그의 제자 의암 손병희에 의해 1919년 3.1 만세혁명이 가능했다. 신분철폐와 인간존중의 삶을 갈망하며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했던 동학인들은 조선왕조 지배세력들과 일본군에 의해 30만명이 넘는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른 후, 흩어져 항일 의병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척왜와 독립을 위한 3.1만세혁명은 동학농민혁명의 변주곡으로 이 땅에 다시 태어났다. 일제는 동학인들이 항일 독립운동으로 이어가자 동학을 영원히 몰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손병희 선생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며 이에 대한 항거로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했다.
보성사를 운영하면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고, 민족대표 33인중 15인이 동학(천도교), 그 중 9인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리더로 활약했다.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와 동덕여학(동덕여대 전신)를 인수하며 교육을 통한 구국에 헌신했던 그는 소파 방정환의 장인이기도 하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종로) 건립을 위해 당시 300만 교인들이 남자들은 짚신을 삼고, 여자들은 삯바느질, 논밭과 황소를 팔아 모은 100만원 중 건축비용 27만원을 제외한 거금을 3.1만세혁명, 독립운동 자금으로 모두 사용했다. 당시 한옥 1채가 1000원이었으니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로 인해 대교당 건립도 1921년으로 늦어졌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결국 천도교의 자금과 인적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3.1만세혁명과 임시정부의 실현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것을 입증한다.
손병희 선생은 대한민국 초대임시정부 대통령에 추대됐지만 독립을 위한 길을 선택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출소 후 1922년 5월 결국 순국한다.
지난해는 천도교 대교당 건립 100주년이었으며, 올해는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년의 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동학의 ‘보국안민, 광제창생’ 정신을 계승해 ‘대한민국 임시헌장(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임)을 만들었다. 이는 외래 사상이 아닌 바로 청년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포덕한 궁극적 가치였다. 근대사 출발의 구심점이 되는 경주 용담은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에서 해월 최시형, 그리고 의암 손병희로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해방된 조국으로 귀국해 백범 김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우이동 봉황각 손병희 묘역이었다. 그는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선생님 이제사 돌아왔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가 오늘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고 전해진다.
경주에는 3.1만세혁명 성공기원과 국권회복을 위한 49일 기도처도 있었다. 해월 최시형의 아들 최동희는 1920년 8월 ‘최동희 음모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대구의 부호인 윤홍열, 경주 최부자집 둘째 아들 최완 등과 만나 민족혁명 방침에 대해 논의하다 일제 경찰에 의해 9월에 체포돼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것이 바로 동학을 얘기하지 않고 3.1만세혁명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많이 늦었지만, 봉황대 옆 3.1운동 표지석이 설치됐음은 참으로 다행이다. 경주시는 서양의 사상, 철학, 종교를 뛰어넘은 위대한 동학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관광 콘텐츠를 조성해주길 호소한다. 경주시가 전국에 퍼져있는 동학의 주도권을 하루 빨리 찾아와 역사·문화도시로서 경주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세계 초 일류국가로 나아가는 중심이 될 수 있길 간절히 원한다. 이는 동학인들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