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일 동제를 봉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살기좋은 고장으로 전통 풍속을 지키며 신의 영험한 힘으로 이 터전에서 대대손손 살아왔습니다. 신의 영험이 온 동네를 감싸 안으시매, 상서롭지 못한 일은 막아 주시고 질병과 고통을 없애 주시므로 집집마다 좋은 일과 은광(恩光)을 주오시니 신의 크나큰 은덕입니다”
지난 15일은 정월대보름이었습니다. 정월대보름은 우리 세시풍속에선 매우 중요한 날로 설날만큼 비중이 큽니다. 우리 지역에선 봄을 재촉하는 빗님이 내린 뒤 휘황찬란하게 두둥실 떠 오른 달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경주 여러 지역에서도 다소 축소된 형식으로 동제(洞祭)들이 치러졌겠지요. 동제는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이면 한 해의 무사 안녕과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행사지요.
지금까지 세시풍속으로 그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지역이 많습니다. 지역에서도 지난 14일 밤 12시, 제36회 정월대보름 황오동제가 열렸습니다. 달빛이 유난히 교교했던 황오동 제례 현장에 저도 다녀왔습니다. 성동장미아파트 남쪽 당수나무 아래 북정(北亭) 제단에서 동제가 열렸는데요, 이 동제는 황오동발전협의회와 황오동행정복지센터에서 주관했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동제 자체를 치르지 않은 곳이 많은데 비해 이곳만큼은 유지가 되고 있었습니다. 제단 위에 제물을 가득 올리고 여러 제관들이 지극정성으로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는데요, 황오동장을 포함해 수 십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된 동제에서 주민들의 표정은 달빛 아래 환하게 밝았고 각자의 소원을 비는 모습은 행복해보였습니다.
한편, 성동동 421-43번지 도로가에 있는 당수나무는 회화나무로 올해 100세를 맞이합니다. 이 나무를 심은 이는 김억술, 김용재 부자(父子)입니다. 100여 년 전, 이곳의 기존 당수나무가 불에 타서 죽은 자리에 일제강점기인 1928년 김억술, 김용재 부자가 자택인 경주시 북부동 5-2번지 성터 위에서 자라고 있던 5년생 회화나무를 이곳 북정으로 옮겨 심었다고 합니다.
이후 아들인 김용재 선생은 생전에 매년 막걸리 한 말씩을 이 나무에 부어주며 동민들과 함께 무사안녕을 기원했다고 합니다. 이 나무 아래 매년 음력 보름 전날 밤(음력 1월14일)에 황오동 주관으로 마을 주민들이 동제를 지내고 있으며 올해도 정월대보름 황오동제를 지낸 것이죠. 이 당수나무를 심었던 오는 5월에는 재식자인 김용재 씨의 자손들이 이 마을 출신 주민들과 함께 100세 수령을 기념해 잔치를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당수나무 주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8명의 개구쟁이 꼬마들은 이제, 경향각지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으며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모임을 기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모임 이름은 ‘회나무회’라고 한다지요. 예전의 당수나무 아래서 지내던 동제를 그 자리에 새롭게 식재한 당수나무를 키워 전통을 잇는 마음으로 동제를 지내니 참으로 보기 드문 귀한 풍속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