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가장 가까운 성당이 경주에 두 곳 있다. 경주 양남성당(주임 서준영(라파엘) 신부)과 감포공소(허연구(모이세) 신부)는 두 곳 모두 각각 양남면과 감포읍의 동해 푸른 바다를 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국제통상마이스터고(구 감포고등학교) 입구와 같은 길을 사용하고 있는 감포공소는 개항 100년 감포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고 양남면 주상절리와 월성원자력공단 사이 언덕위에 위치하는 양남성당은 ​바로 지척의 나아리 바다를 조망 할 수 있다.
드라마에도 등장한 적 있을 만큼 천혜의 풍광을 끼고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물론, 두 성당은 마치 형과 아우처럼 본당과 공소로 지역민의 위로처로 역할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8일, 평소에도 눈여겨 보아두었던 아름다운 두 성당을 찾았다. 특히 감포공소에서의 허연구 신부님과의 인터뷰는 두 성당의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다.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노사제(老司祭)인 신부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양남성당...드넓게 펼쳐진 청정 나아 동해바다의 절경이 발아래, 1995년 준공 양남성당은 경주시 양남면 양남항구길 103-4에 위치하며 양남면 주상절리와 월성원자력공단 사이 언덕위에 있다. 이 성당에선 드넓게 펼쳐진 청정 경주 나아 동해바다의 절경이 발아래서 펼쳐진다. 양남성당 관할공소로는 감포공소가 있다.
양남성당은 1983년 2월, 신자들의 최초 모임 이후 1983년 가정공소 예절을 시작으로 1984년 양남공소로 정식 인준 받는다. 1987년 양남성당 신축 계획 및 부지를 매입해 1994년 4월, 양남성당 공사를 착수한다. 이듬해 1995년 양남성당은 준공되었고 1997년 양남본당으로 승격돼 초대주임신부로 박홍도 치릴로 신부가 부임했다. 1999년 교육관을 준공하고 1999년 감포공소 건립 계획 확정과 기금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2000년 제2대 정춘석 아우스딩 신부가 부임하고 2001년 ‘엠마오(교육관)’ 피정 공간을 확보했다. 2001년 실외에 14처를 준공하고 2002년 성당 내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다. 2003년 제3대 태진석 세레자요한 신부가 부임했고 2005년 9월, 감포공소가 준공됐다. 현재 서준영 라파엘 주임신부가 양남성당을 이끌고 있다.
-‘십자가의 길 14처’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갖추고 있는 작지만 옹골찬 성당 양남성당 내부는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매서운 겨울대기가 성당 가득 매콤한데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오전의 겨울햇살은 투명하게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푸른빛이 다양하게 투영된 성당은 영적 정신성을 더욱 깊게 반영하는 듯 했다. 어렵지 않게 그려져 있는 벽화는 성화를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제대 뒤에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해 제대 전체를 감싸고 있는 성전이었다. 뚜렷한 원색의 스테인드글라스 또한 친숙한 성화로 표현하고 전체적으로는 푸른빛이 돌아 신비롭게 보였다.
성당 입구로 오르는 좌측에는 예수상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매운 한파에 시달려 잎사귀가 불그레해진 동백은 그래도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엠마오(Emmao, 교육관)’ 공간 옥상으로 오르니 앞바다가 바로 지척에서 펼쳐졌다. 성당 마당은 넓었고 입구서부터 제1처가 시작돼 정원을 가로질러 예배당까지 제14처까지 ‘십자가의 길’이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신자들과 방문객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도 마련돼 있다.
양남성당은 전국의 본당 중에서도 규모가 작아서 아담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자그마한 공동체다. 그러나 14처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갖추고 있는 옹골찬 성당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동해바다가 지척인 전망 좋은 곳에 있어서인지 여름에는 피정 등으로 외부 손님이 넘쳐난다고 한다.
한편, 해안가에 인접해있어 매년 태풍의 피해가 잦은데 지난 2020년 9월엔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으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 성당이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파도로 인한 피해는 없었지만 강풍을 고스란히 맞았던 것이다. 연이은 태풍으로 식당뿐만 아니라 성당 창고, 사무실 등이 파손됐었다. 성당 식당과 창고, 사무실 등 복구에 큰 비용이 필요했지만 양남본당 신자들은 한뜻으로 마음을 모아 함께 복구를 했다고 한다.
-양남성당 감포공소...“제가 있는 동안 감포공소가 본당이 될 수 있도록 전념할 생각입니다” 경주시 감포읍 감포로12길 19-8에 위치한 감포공소는 신자들의 피정(避靜) 장소로도 추천될만한 곳이다. 감포항은 물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송대말 등대도 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일품이다. 개항 100년의 감포항을 이렇게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이 성당의 위치를 따라올 장소는 없다.
1980년대 두 명의 신자들로 시작된 이곳 감포공소는 다른 공소에 비해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천주교’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곳에서 당시 소속인 성동성당까지 매 주일 미사 참례가 힘들어 함께 공소예절을 하게 되면서부터 성동성당 주임 신부로부터 ‘감포공소’라는 명칭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천주교’의 불모지와 다름없던 이곳에서 신앙의 씨앗을 뿌리고, 공소예절을 거쳐 미사를 봉헌하게 되면서 차츰 신자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그러나 그 건립과정이 순탄치 못했는데 1980년대 부지를 구입했지만 들어오는 입구가 감포중학교 소유인 탓에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신자들의 간절한 바람으로 2004년 다시 공사가 시작되었고 드디어 2005년 9월 최영수(요한) 대주교 주례로 감격스러운 봉헌식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공소는 코로나로 일 년간 미사조차 없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절망스런 상황속, 이 성당에 감포 본당 설립을 위해 부임한 노사제가 있다. 허연구 모이세 주임신부는 지난해 2021년 3월 1일자로 이곳에 부임했다. 감포공소는 신부가 있어도 신자가 한 두 명에 그친 공소였으니 사제들도 선뜻 자청하는 곳이 아니었다고 한다.
신부가 된지 56년째인 올해 89세의 신부는 스스로 ‘노사제’라 자칭한다. 허 신부는 사제생활 50년 동안 가톨릭농민회와 노동운동에도 헌신해왔던 사제로서 청소년사목 활성화를 위해 전 사재를 털어 대철장학회를 설립하고 바른 청소년 성장을 돕기 위한 물질적·정서적 지원에 기여하기도 했던 이다.
허 신부가 아무도 없는 이 공소에 온 후부터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성모상 주변을 정비하고 스산했던 마당에 잔디와 꽃들을 심어 정성껏 가꾼 외적 변화 이외에도 전국에서 신자들이 이곳으로 찾아오는 것인데, 아마도 헌신적인 사제로서의 삶을 실천하고 살아온 허 신부의 영향력의 방증인 듯 했다. 허 신부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살며 이곳을 감포의 또 다른 명소로 가꾸고 더 큰 교회로 성장하도록 기도한다.
“주교님께 간청했어요. 주교님 이하 여러 사람들의 반대에도 이곳에 자청해서 왔습니다. 저는 은퇴 20년이 지났지만 자원해서 기꺼이 이곳으로 왔습니다. 양남본당에 속하는 감포공소를 본당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처한 것입니다. 내년에는 사제관을 만들 예정입니다. 제가 있는 동안 감포공소가 본당이 될 수 있도록 전념할 생각입니다”
-대구대교구에서는 유일하게 감포‘읍’이지만 양남‘면’에 속하는 감포공소, “아름다운 공간을 공개해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우리 성당은 원합니다” “1984년 경주 성동본당에 있던 박도식 신부가 감포 성당 터와 양남성당 터, 모화 성당 터를 마련하셨습니다. 2005년 이 성당 건물 70평을 지었고 월성원자력공단이 있던 양남면에 25년 전 양남성당을 지었었지요. 당시 양남성당엔 신자들이 300명이 넘었고 월성원자력공단 직원과 가족들이 그 성당 주 신자들이었죠. 한편, 감포엔 부지는 사두었지만 교우들이 없어서 공소로 역할 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니 교우들이 모이는 장소로서의 ‘공소’였습니다”
신부가 상주해야만 본당이 될 수 있는데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대구대교구에서는 유일하게도, 감포읍이지만 양남면에 속하는 공소가 된 것입니다. 2005년 준공 후 지금까지 면 단위에 속한 읍 단위의 공소지요”
감포를 찾는 많은 이들이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것을 알고 성당 입구에 ‘감포성당’이라는 안내표지판을 내건 것도 허 신부의 전략이었다. 자연스레 성당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점차 성당의 존재도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 공소가 활발했을때도 신자는 20명이 넘지 않았다고 한다.
“제가 부임했던 지난해만해도 코로나로 신자가 더욱 줄어들어 3~4명에 불과했고 그야말로 황폐일로의 공소였습니다. 지금은 17명으로 늘어났고 앞으로는 더 늘어갈 것이고 교회도 발전할 테니 보람있는 나날이지요. 노사제가 여기 와 있으니 제가 옛날에 세례를 줬던 교우들이 전국에서 찾아오고 있어요(웃음)”
허 신부는 이곳 공소의 주변 풍광의 아름다움을 일반인에도 널리 알리고자 한다.
“아름다운 공간을 공개해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우리 성당은 원합니다. 봄이 되면 이곳 감포공소가 더욱 아름다워질 겁니다. 코로나가 조금 누그러뜨려지면 50~70명 정도로 신자를 늘이고 싶어요. 지역사회에서 문화적 사업에도 참여해 성당의 외연도 확장시키고 싶습니다. 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건강하게 변화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 밑거름 역할을 할 것입니다. 가장 버려진 땅에 단단한 반석을 다져놓고 싶은 거지요. 힘닿는데 까지 일하려하니, 저를 도와주는 발길이 이어지고 기쁘고 감사한 일이죠”
감포공소는 일반인이 미사에 참석하는 것도 환영한다. 감포공소의 미사시간은 주일 오전 11시, 토요 특전미사 오후 7시 30분, 평일(화, 목)오전 11시, 평일(수, 금) 오후 7시 3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