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입니다. 며칠간 겨울 날씨 답지 않게 포근했던 날들이 이어졌고 중국발 미세먼지가 마치 봄날 황사처럼 대기를 뒤덮었었죠. 무언가 맑은 바람 한 줄기를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바다였으면 더욱 좋았겠기에 감포 푸른 바다를 찾았습니다. 감포에 사는 오랜 지인을 만나 골목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어르신 한 분이 커다란 대야 가득 멸치를 가득 담고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막 감포항구에 멸치잡이 배가 정박해서 멸치들을 털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종이 무엇이든 만선의 선박에서 손에 잡힐 듯한 어부들의 진한 땀방울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을 좋아했던 지라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감포항구에선 심심찮게 만선의 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날도 감포항에선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만선의 기쁨과 함께 멸치를 터는 고단한 작업을 볼 수 있었는데요, 정박한 어선에선 그물에 잡힌 멸치들을 털어내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어부들이 한 줄로 나란히 서서 멸치 터는 작업을 하면서 감포항은 예의 그 본분을 다하며 활기를 띄고 있었습니다. 다른 어선의 경우, 조업을 하고 항구에 닿으면 대부분의 일이 끝나는 반면 멸치잡이 배는 귀항 한 뒤 본격적인 일이 시작됩니다. 멸치를 잡아 올리는 것보다 항구로 돌아와 그물에 걸린 멸치를 털어내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켜보는 우리에겐 속이 후련해질만치 진한 삶의 현장으로 다가와 케케묵은 일상의 찌뿌둥함을 한 번에 날려주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장면입니다.
큰 언덕 정도의 멸치 더미를 보자니 아직 우리의 바다가 건재한 것 같아 슬며시 안도가 되었고요. 선원들의 얼굴과 몸에는 멸치비늘로 뒤범벅이 돼 만선의 기쁨과 교차됩니다. 감포항 멸치는 초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많이 잡힌다고 합니다. 멸치 경매는 감포 수협에서 수 분만에 정해지고 감포 바다에서 잡은 멸치는 전량 젓갈용으로 저장됩니다. 이 멸치잡이 어선은 많을 때는 하루에도 몇 대씩 들어온다고 합니다.
갈매기들이 어선 주위를 빙빙 돌면서 호시탐탐 먹이를 낚아챌 준비를 합니다. 이렇게 고기들을 수중에 넣으려는 갈매기들 수 십 마리가 기회만 엿보며 어선 주위를 선회하는 것이죠. 그 모습도 장관입니다.
멸치 터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선박 주위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합니다. 그 비린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어부들은 살아 갈테죠. 우리의 삶에도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순정하고 진지한 땀방울이 스며들고 있을까요? 혹시 그들을 비루하고 억척스럽게만 보진 않나요? 감포항에서 오랜만에 생명력 넘치는 역동적인 어부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고상한 삶의 베일 따윈 말끔하게 걷어내고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