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육부촌, 보문탑, 호숫가 오래된 호텔들, 쇼핑센터였던 상가들...이들 건축물들은 1979년 조성됐다. 이들 건축물은 화려하고 웅장한가하면, 때론 단촐한 한옥 형태로 1970년대 당시의 건축양식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특히 단지 내 상가건물들은 수년째 비어있음에도 사람들이 유유자적 산책하고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는다. 현재 보문상가에는 13개 동에 34개 점포가 남아 있는데 적당하게 잘 발효된 술처럼 건물과 주변 경관은 중앙의 아름다운 물길과 함께 잘 스며들어 어느새 심미적 감상자가 되게 한다. 한편, 보문상가는 단지 내 노른자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슬럼화가 가속됐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9년 12월, 경북문화관광공사는 보문단지 내 2만5000여㎡의 보문단지 상가를 매각했다. 이로써 1980년대 소규모 기념품매장 위주의 구조로 영업하다 수년째 문이 내려진 채 방치된 보문단지 중심상가가 민자를 통한 활성화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민간자본을 유치는 했으나 매각에 바로 이어진 코로나 사태로 일련의 변화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곳을 지나는 많은 경주시민과 관광객들은 현재 비어있는 이곳에 대한 스토리나 방치된 연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은 물론, 민자에 유치된 만큼 속히 정상화되어 보문관광단지의 활성화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 27일,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홍보팀 김병찬 전문위원을 만나 보문관광단지 조성 배경과 단지 내 현재 방치돼있는 상가 건축물들의 연혁과 숨겨진 스토리에 대해 들어 보았다. -상가 건물 사이 정원들은 널찍, 전돌은 거의 연꽃 문양, 바닥은 화강암이나 전돌 단지 내 상가 건물 사이사이 정원들은 널찍해 답답하지 않았다. 바닥은 화강암이나 전돌을 크게 깔았거나 정방형으로 작게 깔아 놓은 곳이 대부분이다. 전돌은 거의 연꽃 문양이다. 화강암은 인도를 겸해 차도로 다니는 곳에 깔았고 전돌은 인도 전용으로 깔아 놓았다. 상가 건물을 오르내리는 계단 대부분은 화강암이다. 상가에 식재된 조경 수종은 향나무, 목련, 백일홍, 명자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등이었는데 유독 목련이 많았다. 40년 이상의 조경수들은 제법 시간의 나이테를 두텁게 하고 있었다. 이제 나뭇잎들은 모두 지고 매서운 겨울바람에 맨몸으로 흔들리고 있지만 그리 스산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상가 건축물이 아기자기한 덕인 것 같았다. -1979년 아시아태평양관광총회(PATA) 유치하면서 경주보문단지 조성...국내 유일 관광객 수용 위한 관광유원지지구로 조성 보문단지를 조성하게 된 첫째 이유는 1979년 우리나라에서 아시아태평양관광총회(PATA)를 유치해 개최했던 것에 기인한다. 아시아태평양관광총회 본회의는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하고 워크숍은 고도 경주에서 개최하자는 중지가 모여졌으나 당시 경주에는 그들을 수용할 관련 시설이 없었다. 기껏해야 불국사 철도호텔이나 경주시내 경주관광호텔 정도였던 것이다. 그 외에는 수학여행단을 위한 숙소 뿐인 시절이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급하게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에는 경주 유적지 정비(주차장과 화장실 정비 정도)를 비롯해 관광유원지조성이 포함됐다.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한 관광유원지지구가 바로 보문관광단지 조성이었다. 조성 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재원 마련이었는데 차관 없이는 실행하기 힘든 사업이었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차관 신청한 금액은 당시 2200만 달러였다. 당시 국민소득이 1734달러였던 시절이었으니 실로 엄청난 금액의 투입이었다. 공업시설도 아닌, 그야말로 위락시설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투자였다. 차관을 했으니 그 빚을 갚아야했고 경영으로 관리할 주체가 필요했었다. 김병찬 전문위원은 “이를 위해 정부가 경주관광개발공사를 발족시켰습니다. 현재의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의 전신이 되겠지요. 저희는 보문관광단지 전체를 관리하면서 관광용지를 분양해 은행 차관을 모두 갚았습니다. 한 번의 연체 없이 모두 갚은 경우는 우리나라, 경주관광개발공사 뿐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육부촌은 연회와 컨벤션 장소로 경회루 본떠서 짓고 공연장으로는 보문탑, 쇼핑센터로 상가 조성// 박정희 대통령이 경주 콘셉트 정해 직접 지시 보문단지 조성 당시 육부촌 건물과 상가 건물들은 동시에 지었다. 1975년 착공해 1979년 4월 6일, 준공식을 겸해 아시아태평양관광총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총회 날짜에 맞추어 완공했던 것. 이들 건물들과 동시에 준공한 건축물은 콩코드호텔(구 도쿄 호텔), 코모도 호텔(구 조선호텔), 옛 ‘거구장’ 건물 등이었다. 육부촌은 국제회의장으로 컨벤션(convention)용으로 지은 건물이었다. 육부촌 인근 보문호숫가에 새로 지은 두 호텔에서는 숙박을 하고 지척에 있는 지금의 상가건물은 쇼핑센터로 지었다. 쇼핑센터인 상가들은 맞배지붕의 단칸 한옥 형식이어서 쇼핑센터로서는 다소 비효율적이었다. 소규모 기념품매장 형식이었다. 한편, 이들과 유사한 경주에서 보는 1970년대 대표적 건물로는 ‘통일전’, ‘화랑의 집’, 각 유적지의 화장실, 진현동의 숙박시설 등을 꼽을 수 있는데 대체로 기와지붕에 콘크리트 구조의 몸체로 거의 같은 유형의 건물들이 많다. 건물 벽면 색은 거의 미색을 사용해 건령을 바로 짐작할 수 있다. 건물들 사이로는 향나무와 목련이 한옥 앞에 식재된것도 1970년대 시대적 특징의 한 단면이라고 한다. 이들 건축물은 다소 국적이 불분명한 건축물이라는 평도 있지만 그 시대에 지은 독특한 건축 유산이라는 의견도 많다. 이때 조성된 육부촌과 상가들도 이 형태를 고스란히 반영해 지었고 오늘까지 당시 한옥의 특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문단지 내 사람들이 붐볐던 집결지로서 역할했던 보문탑(일명 팔각정)은 국내외국인이 경주를 찾았을 때 공연할 장소로 만든 것으로 수 년 전까지는 활발하게 운영됐다. 보문탑 바로 입구에는 보문관광단지 조성의 배경을 간략하게 기록해 두었다. ‘1971년 6월 12일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신라천년의 찬란한 민족문화 유산을 길이 보존하기 위해 경주관광종합개발을 지시하셨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관광객을 위한 휴식공간으로서 보문관광단지를 개발하였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탑을 건립하였다. 1979년 4월 6일 건설부 경주개발건설사무소’. 김 위원은 “보문단지의 전체적 디자인 콘셉트는 ‘청와대 4인방(청와대 경주종합개발사업단)’이라 불리는 팀에서 맡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경주 콘셉트를 정해 직접 지시할 때 웅대, 찬란, 정교, 유연, 우아 등을 고려해 조성할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한옥 형태를 띠되, 꽃담을 갖추는 등 옛 궁궐형식을 도입해 모티브를 잡은 것 같습니다. 육부촌은 연회와 컨벤션 장소였으므로 경회루를 본떠서 지었고 팔작지붕으로 크고 화려하게 지었죠. 육부촌과 바로 연결해 쇼핑센터인 상가 건물은 맞배지붕으로 단촐하게 지었고 공연장으로 보문탑을 지었는데 법주사 팔상전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합니다. 인근 호텔서는 숙박하도록 했고요. 당시 건설부 경주개발사업단에서 공사를 시행했고 설계는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가 맡았어요”라고 설명했다. 한편, 보문관광단지 조성을 지시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에 서거해 예정되어 있었던 경주종합개발 2차 계획은 무산된다. -민간에 매입된 상가건물의 기본골격은 무너뜨리지 않고 보존하는 방향으로 가닥 잡아 이 보문탑 공연장을 포함해 상가 운영은 당시 신세계백화점에 맡겼다고 한다. 일반 상인은 영어 구사에 어려움이 있었으니 정부에서 강제로 떠맡긴 셈이었다. 그러나 일 년 만에 적자가 심해 경영을 포기한다. 쇼핑센터로는 다소 비효율적 형태인데다 평일 수입이 시원찮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민간기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후 경주상공회의소에서 몇 년간 운영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이후 경주관광개발공사가 맡아 상가들을 임대했다. 1985년 경 임대했으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공기업 구조조정으로 민간이 운영할 수 있으면 최대한 민자화하라는 방침이 내려졌고 강력한 기조였다. 이곳이 상가였으므로 이들 상가들도 1990년 초반부터 매각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문관광단지의 건폐율은 20%(보문단지 내 녹지와의 균형)로 매우 낮은 편이어서 투자 대비 사업성이 낮은 편이어서 매각에 진통이 뒤따랐다. 지난 2019년 12월, 경북문화관광공사는 20여 년에 걸쳐 보문단지 내 2만5000여㎡의 보문단지 상가를 민간에 매각하기에 이른다. 김병찬 전문위원은 “상가 부지이므로 매입한 이들도 아직은 건물의 기본골격은 무너뜨리지 않고 보존한다는 기조는 바뀌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지 상가건물의 경우, 한옥이고 폐쇄형이기 때문에 골조는 유지하되 상가건물의 내부에 대해 효율적인 구조변경을 포함한 리노베이션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또 중간집적시설로서 보문탑은 이벤트나 광장으로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존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금까지는 사업의 방향성을 계속 타진하고 있어서 다소 지지부진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라며 공사측에서도 매입주에게 건축물군의 보존방향으로 가닥을 잡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45년 전 일반 저수지 옆, 황무지 땅이었던 보문단지에 지금은 연간 1000만 명이 찾는다. 이렇게 국제적인 관광단지로 발돋움하기까지는 초기 경주관광개발공사와 현재의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의 노력과 함께 민간에 유치된 단지 내 상가가 활성화 돼 주변 경관과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보문단지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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