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역 폐역일이 불과 4~5일 남아 그야말로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제 서야 여러 매체에선 경주역을 감상적 소재로 앞 다투어 보도하기 바쁜듯하다.
경주역의 정확한 폐역일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적 발표는 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달 27일 23시 59분까지 운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국토부 고시가 되어야 최종적인 것을 알 수 있을 테지만 최종 발표는 아직 안된 상황이다. 매우 늦은 감이 있지만 폐역을 기념해 경주시 문화예술과는 28일 간단한 행사를 할 예정이나 실상 이날은 이미 경주역사 전체가 텅 비어 있을 거라고 한다.
또 지난 15일은 경주시와 경주상공회의소 주관으로 경주역에서 부산방면으로 추억여행(아듀! 경주역, 잊지마 레일)을 다녀오기도 했다. 폐역의 순간이 다가오자 일각에서는 경주시에서 추억의 기차여행 기획을 좀 더 일찍 시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시민들도 경주역 폐역 사실을 보도로 접하고 평소보다 경주역을 찾아 기차여행을 다녀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기자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차례 경주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여행을 다녀 온 적이 있지만 지난 19일 다시 한 번 경주역에서 출발해 울산 태화강역까지 다녀왔고 폐역 직전에 또 한 번 더 다녀올 계획이다.
경주역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울컥해졌다. 많은 이들이 경주역 광장에서 역사와 역명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맞이방에서는 많은 이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고 플랫폼에서도 막 들어오는 기차를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극성스럽던 한파가 다소 누그러져서인지 객차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친구, 가족, 연인들은 각자의 사연을 품고 기차를 탔을 것이다. 한편, 새로운 동해선의 개통에 맞춰 정해진 신설 역명들을 살펴보니 대표성이나 일관성이 없어 아쉬움이 크다. 폐역을 며칠 남기지 않은 현재까지는 경주역이라는 역명은 흡수되지 않았고 신경주역이라는 역명이 그대로이며 현곡파출소 앞 역은 서경주역이라는 것. 경주시에 ‘경주역’은 없고 신경주역과 서경주역이라는 역명만 존속될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경주시에 묻고 싶다. 10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운행된 ‘경주역’의 역명 안에 내포된 스토리나 역사적 가치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휘발시킬 수 있는지.
울산시의 경우 2010년 KTX울산역이 개통될 때 예전 ‘울산역’을 ‘태화강역’으로 바꾸고 KTX역을 ‘울산역’으로 역명을 존속시켰다. 바로 인근 지자체에서 이런 좋은 선례가 있으니 참고하기를 촉구한다.
애초 경주시는 KTX신경주역 개통 당시, ‘경주역’이라는 역명 전환에 대해 명확한 결정을 보류해왔다고 한다. 신경주역이 개통될 때 경주역으로 역명을 정했으면 쉬운 일이었는데 새삼스러운 일이 됐다고 안타까워하는 관계자도 있다.
경주역 역명은 반드시 존속되어야 한다. 경주역은 역명 안에서라도 이어져 숨 쉬고 경주시민과 국내외 방문객들과 함께 호흡하도록 해야 한다. 많은 시민들은 경주역의 모든 기능을 신경주역이 통합, 흡수하는 마당에 ‘경주역’이라는 역명은 존중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21일 경주시폐철도활용사업단 관계자는 폐역일과 역명에 대해 “현재 국토부 고시에도 경주역이라는 역명은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 역명은 폐역 고시 전에 결정되어야 하는데 아직 코레일과 국토부에서 최종 폐역 고시가 나지 않은 상태다. 신설역이 개통되기 직전에 고시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24일이나 27일 즈음 국토부 고시가 날 것으로 보인다. 저희도 신경주역 명칭을 경주역으로 바꾸는 건에 대한 협의가 수차례 진행돼 왔다. 곧 코레일과 협의를 해 봐야 하는 부분으로 경주역의 역명을 존속하자는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했다.
경주시에 ‘경주역’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역명은 지자체와 국토부 간의 협의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지자체의 의지가 더욱 중요하게 반영된다고 한다. 한 번 정해진 역명을 바꾸려면 많은 시간과 간단치 않은 절차가 필요하다고 하니 국토부 고시가 나기 전, 서둘러 경주시의 의견을 전달하기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경주시민과 애환을 함께해 온 103년 경주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로운 활용방안이 모색되는 시점이다. 경주역은 10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경주시민뿐만 아니라 경주를 찾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이거나 혹은 특별한 삶의 한 부분을 감당해 낸 공간이었다. 이제 그 공간이 다시 문화적 자산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면서, 경주역이여!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