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정의 전설을 신이 나서 말하다가 오른편 울창한 송림을 가리키며 오릉이라 하고 이어 알영정이 그 옆에 있다고 합니다. 사릉(蛇陵)이라는 오릉을 바라만 보고 지나치려든 나는 알영정이라는 말을 듣자 정차하기를 청하여 솔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립던 옛 터를 찾아 신라 고도의 경주로’, 조선일보, 1934년, 박화성 글 중에서. ‘문천 남쪽 언덕 오릉의 동남방에 알영정을 찾으니 우수수 하는 대수풀 한 귀퉁이에 알영정이라 한 목표(木標)가 있고 그 앞에 알영정과는 아주 딴판인 흙무더기가 있고...-‘경주행’, 개벽, 제18호, 1921년, 권덕규 글 중에서. 경주유적지 중에는 고분들과 능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경주를 찾는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능으로는 대릉원이 으뜸이겠지요. 그러나 능역도 넓고 사계절 아름다운 오릉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편입니다. 오릉은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능묘이자 사적입니다. ​짧은 겨울햇살을 만끽하면서 고요하게 산책하기 좋은 오릉을 찾았습니다. 오릉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차차웅, 제3대 유리이사금, 제4대 파사이사금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능으로 사적 제172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아직 발굴조사가 실시된 바 없어 각 능의 구조를 알 수 없으며 경주일대에서 3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원형봉토분의 구조형식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알려진 피장자와 직접 연관시키기는 아직 이른 실정이라고 합니다. 오릉 동편에는 지금도 시조왕의 위패를 모시는 숭덕전이 있으며 그 뒤에는 알영부인이 탄생한 알영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동절기인 요즘 오릉을 관람시간은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입니다. 넓게 공원처럼 조성된 능역 안에는 모과가 아직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대나무 숲길 또한 잘 가꿔져 초록이 귀한 겨울 능역에 활기를 더해주더군요. 이 대나무 숲길은 중앙으로 산책길이 나 있어서 걷다보면 오릉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기품있는 소나무 숲 뒤로도 시야 가득 오릉이 들어오기도 하지요. 알영정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대나무 숲은 이맘때쯤 제법 대나무 잎사귀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깊어집니다.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릉원도 훌륭하지만 이곳 오릉은 오릉만의 여유와 힐링을 선사해주는 공간입니다. 특히 겨울철 오릉은 능역의 규모나 능의 적요한 아름다움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선지 다소 적막하기까지 한데요. 한가롭게 거닐기에는 오릉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릉을 산책하며 한 바퀴 도는 시간은 천천히 걸었을 때 약 1시간여 걸립니다. 코로나 상황이 심상치 않은 시국입니다. 우리들 발자국 소리 기다리는 오릉을 찾아 외롭고 답답한 심사를 신라왕들에게 토로해도 좋을듯합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