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민과 애환을 함께해 온 103년 경주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로운 활용방안이 모색되는 시점이다. 경주시는 경주역 부지의 임시활용을 제시한 상태고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수렴을 거치고 있기는 하다. 기능이 상실될 경주역 및 광장을 시민은 물론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보고 싶은 명소로 만들기 위한 경주역의 활용방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본지 1509호부터 이어진 ‘아! 경주역! 굿바이 경주역!’은 모두 세 편으로 구성해 이번호(1512호)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경주시민이라면 경주역에 얽힌 사연과 기억이 없을 수 없겠다. 이번호에서는 시민들이 체감하는 경주역 폐역에 대한 소회와 경주역에 대한 추억담을 들어보았다. 시민들은 한결같이 폐역 후 경주역사 보존과 활용에 입을 모았다.
지난 2일에는 저녁 6시 35분경 경주역을 찾아보았다. 경주역 광장 한 모퉁이에서 쭈그리고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던 어느 시민을 보자니 가슴 한켠이 저려왔다. 역 내 대합실과 플랫폼에는 평일 저녁 시간이었는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마침 6시 50분 무궁화호를 이용하려고 드문드문 플랫폼 의자에 앉아있는 승객들은 기차를 기다렸다가는 곧 떠났다. 그들은 곧 폐역될 경주역의 운명을 알고 있을까.
우리는 경주역이 폐역되더라도 기념하고 기억해야 한다. 10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경주시민뿐만 아니라 경주를 찾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이거나 혹은 특별한 삶의 한 부분을 감당해 낸 공간이었다. 이제 그 공간이 다시 문화적 자산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면서 경주역이여! 굿바이!
-허남태(전 경주역장)...“10여 년을 경주역에서 근무, 경주역 가면 아직도 아날로그적 감성과 설렘 듬뿍 느낄 수 있어” 다음달이면 동해선 개통으로 103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던 경주역이 문을 닫게 되니 제 33년 철도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1989년 경주역 수송원을 시작으로 역무원, 역무팀장, 부역장 등을 거쳐 지난해 연말 경주역장을 끝으로 은퇴하는 과정에서 10여 년을 경주역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러니 경주역에 얼마나 애착이 많으며 폐역에 대한 아쉬움이 크겠습니까.
모두가 환호하는 디지털이 한편으로는 인간관계를 소외되고 메마르게 하지만 경주역을 찾으면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듬뿍 느낄 수 있어 친정 온 새댁 같은 설렘을 주죠. 이제 경주역의 모든 기능은 신경주역으로 이관되어 계속 이어지면서 환승의 장점을 살릴 수 있게 되니 관광 경주의 새로운 호기가 되도록 해야겠지요. 또 경주역사(驛舍)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계속 보존해 시민들이 찾고 모일 수 있는 곳으로 존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기백(연극감독이자 배우, 출향인)...“월남전 파병 군인들이 서울 등지에서 경주역 거쳐 부산으로 갔었죠” 경주에 수없이 많은 이들이 수학여행을 왔었지요. 그들 대부분이 경주역을 통과했었고요. 주로 기차를 이용했으니까요. 거기서 쪽지 받아 펜팔 했던 기억도 나네요. 하하. 명절때마다 서울서 새마을호를 타고 오는 기찻간에서는 고향 친구나 선후배들을 만나기 일쑤였지요. 식당칸에 앉아 자리를 바꿔가며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곤 경주역에 도착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1965년에서 1968년 사이엔 월남전 파병 군인들이 서울 등지에서 경주역을 거쳐 부산으로 갔었죠. 그때 경주여고생이나 경주중고생 등은 경주역 플랫폼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 경주역이 폐역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근대철도문화유산으로 보존하면서 문화공간으로 남았으면 하는데요, 역 광장이 넓어 효용가치가 크다고 봅니다. 역사의 층고가 높아서 독립영화전용상영관 등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경주역을 중심으로 구도심의 활용가치를 높이고 살아 움직이는 공간으로 조성하기를 바랍니다.
-이상필(전 경주향교 전교이자 현 성균관 고문)...“경주역은 정보 교환의 장이요, 경주인 삶의 기본” 1950년에서 1955년 정도니 약 60년 전이었죠. 불국사역에서 경주역까지 신라중학교를 다닌 3년 동안 통학하던 시기였습니다. 경주역에서 통학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울산방면은 ‘울통’, 포항방면은 ‘포통’, 대구방면은 ‘대통’ 이라 부르며 각 학교는 달라도 끼리끼리 모여 다녔었지요. 하교 후 역에서 만나면 당시는 기차가 제 시간에 잘 가지 않아 한 시간씩 늦을 때가 있었는데 울통, 대통, 포통 그룹끼리 만나 가끔은 실랑이도 하고 다투기도 했었죠. 얼마나 에피소드가 많았겠어요. 기차 통행권은 요즘의 신용카드와 마찬가지였어요. 하하.
어떤 학생들은 국화빵 사먹는 등 미리 다 써버리고는 몰래 탔는데 화물칸 탔다가, 지붕위에 올랐다가 객실 탔다가..., 하하. 그때는 단속을 잘하지 않았고 주로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애들은 통행권이 없는 아이들이었어요. 당시 경주역사는 서양식이었고 견고하고 튼튼하게 지었어요. 다른 도시의 역사에 비해 규모도 디자인도 훌륭했고 경주시에선 ‘왕궁’ 같은 역사였어요. 가을철이면 수학여행단이 들끓었는데 경주역 광장에서 만나 펜팔로 주고받다가 지금까지 좋은 인연이 된 사람도 있어요. 그렇게 만난 인연으로 결혼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경주역 광장서는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붐볐고 소매치기범도 경주역에만 있었습니다. 집회하면 무조건 경주역 광장이었고요. 광장이 넓었으니 각종 환영행사나 궐기대회는 무조건 광장에서 이뤄졌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기 가장 쉬웠으니까요. 신라문화제도 경주역에서 출발할 정도로 핫플레이스였죠. 데이트 약속장소로도 경주역은 최적이었고 몰래 만나는 장소였지요. ‘약속’하는 대표적 장소였습니다.
경주역은 정보 교환의 장(場)이요, 경주인의 삶의 기본이었어요. 경주의 가장 중심지로서 물류나 여행, 인적 교류의 장으로 경주의 관문이자 광장문화가 성숙했던, 여론 형성의 생성지였죠. 도시가 변화성장하면서 이런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폐역이 된다고 하니 무척 안타깝지요. 경주인의 삶의 현장이었고 1세기가 넘도록 경주사람들 곁에서 함께 명운을 같이 해 온 역사적인 경주역이잖습니까. 그래서 교통기능은 상실 되어도 역사(驛史)공간은 보존되어야 합니다. -한중권(서예가)는 경주역에 대한 회상을 짧은 글로 대신 철마가 달리길 103년/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하루도 쉬지 않고 달린 철길/ 연세든 시민 누군들 그 시절 기차 탄 추억 없을까?/ 대학 때 기타 메고/ 강릉 MT 가는길/ 교련복 입고 전방입소 할 때는 깃발 펄럭이며/ 동국대에서 경주역까지 행진했었네/ 이제 새해가 되면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을 역/ 추억 속에 묻힐 그 곳 경주역//
-백진호(대추밭백 원장)...“아무런 문화행사 하나 없이 폐역 수순 밟는다는 것은 문화경주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 경주역 폐역을 앞두고 ‘굿바이 경주역’이란 제목으로 한원석 작가의 설치미술 ‘첨성대’를 경주역 광장으로 옮기려했으나 예산반영이 되질 않아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이렇게 경주역 영업이 종료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옳을까요? 100년이 넘은 경주역이 아닌가요. 100년 된 근대 건축물이 어디 있습니까. 경주역 폐역이 다가오는데도 아무런 문화행사 하나 없이 폐역 수순을 밟는다는 것은 우리 문화경주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문화행사기획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폐역 후 경주역에 대한 제언도 하나 말씀드리자면, 도서관을 경주역사 옆에 짓고 경주역사는 미술관으로 리노베이션 하는 겁니다. 전체 부지를 모두 발굴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일부 부지를 발굴해서 현대문화와 근대문화가 교차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으면 하는 거죠. 유수한 세계적 건축가를 초빙해 ‘문화역 서울284’ 처럼 역 내 급수탑 등을 활용해 경주역을 시립미술관으로 활용하자는 겁니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경주역사를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다면 많은 이들이 찾을 것입니다. 100년 넘은 스토리에 현대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짓는다면 미래지향적인 경주의 새로운 이정표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