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역에서 열차를 운행하는 것을 보기 원한다면 서둘러야 한다. 올 12월경 이후엔 경주역의 모든 열차가 신경주역으로 이관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무궁화 선로도 신경주역에서 만나는 것이다. 아직도 경주 시민들 중에는 경주역이 곧 폐역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두 달 여 지나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기차역이 될 경주역은 지금도 묵묵히 영업 중이다. 오래된 침목들 위로 얼마나 많은 기차들이 지났을까.
수많은 기차가 지나간 흔적은 모두 애틋하다. 미뤄서 해악이 되는 일이 더러 있다. 그 중 하나가 아날로그의 대명사로 상징되는 ‘무궁화’호 타고 떠나는 기차여행이다.
하물며 그 이용기간이 한시적임에랴! 경주역을 찾아 마지막 무궁화호를 타고 가을을 느껴보는 것도 경주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일 것 같다.
이번호에선 마지막 경주역 역장(이순호)과의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인 폐역으로의 수순과 소회를 들어보고 폐역 후 경주역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보았다.
-103년간 경주역의 명멸(明滅)을 갈무리할 경주역 마지막 역장 이순호 역장...“폐역 하루 직전까지도 역의 모든 기능은 하게 되고 대부분의 경우 자정 24시 기준으로 진행될 예정” 경주역이 개역한 이래 103년째, 경주역의 숱한 명멸을 지켰던 여러 수장들 중 그 마지막의 대미를 장식하는 역장은 이순호 경주역 역장(한국철도공사 대구경북본부)이다. 1984년 입사 후 37년째 근무중인 이 역장은 직전에 코레일 대구본부서 근무했다. 그는 서경주역, 나원역, 건천역을 거쳐 대구본부로 갔기에 경주역과는 남다른 인연이 있는 역장이다. 이 역장은 경주역 폐역의 모든 순간을 지휘할 예정이다. 최근 부쩍 폐역에 대한 문의 전화가 많아졌다고 전하면서 시민들의 경주역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이순호 역장은 “역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요. 특히 경주역은 말 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막상 부임해 와보니 엄두가 나질 않았어요.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경주역은 그간의 기능이나 역할, 히스토리나 상징적 의미에서도 전국에서 가장 중요한 역 중 한 역이므로 폐역은 상당히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인 경주의 관문으로서 경주역은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역이고, 경주역에 관한 추억은 누구나 한 자락 정도 간직하고 있을 겁니다. 5~6년전만해도 수학여행단이 경주 와서 가장 먼저 첫 발을 내딛는 곳이 경주역이었잖아요. 이런 경주역이 통째로 없어지고 폐역된다는 것에 대해 늦게나마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라면서 첫 운을 뗐다.
“11월 폐역 이야기가 대두됐으나 신경주역에 새로 생기는 선로의 시설물 점검이나 영업 시운전 등 법적으로 정해진 절차가 남아있어서 오는 12월 20~30일 경으로 결정이 날 걸로 예상됩니다. 폐역 하루 직전까지도 역의 모든 기능은 하게 되고 대부분의 경우 자정 24시 기준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경주역은 새로 생기는 역들의 개통에 맞물려 본격적 이사 준비 시작되고 폐역하게 돼 이순호 역장은 “기존 노선에서 변경되는 새로운 노선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지금은 태화강역에서 호계역, 입실역, 불국사역, 경주역, 서경주역을 거쳐 운행됐다면, 호계역부터는 없어지고 호계역에서 신경주역으로 바로 연결이 되는 형식이 있습니다. 또 신경주역에서 새로 생기는 신나원역에서 포항으로 들어가는 형식이 있고요. 따라서 사라지는 역은 입실역, 불국사역, 경주역, 서경주역, 나원역, 안강역 등이죠. 그 중에서 안강역은 위치를 옮겨 다시 짓고 나원역도 신나원역으로 옮깁니다. 또 하나는 영천에서 내려오는 노선인데 서경주역, 경주역으로 들어오는 라인은 선로만 약간 변경돼 중간에 아화역이 새로 생기고 대구서 무궁화를 이용하려면 영천에서 새로운 아화역을 거쳐 신경주역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현재 경주역의 위치보다는 도심으로의 접근성이 지금보다는 다소 용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저희도 걱정입니다. 접근 노선은 정책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라서 어쩔 수 없지요”라고 했다.
“역을 새로 여는 것보다 문을 닫는 작업이 훨씬 걱정이 되고 힘드는 작업입니다. 경주역의 ‘문을 닫자’ 하고 경주로 왔습니다. ‘문을 닫는다’는 것은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의 심적 동요를 일으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근무지가 문을 닫으니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걱정안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문을 닫는 순간까지는 여전히 사고 우려도 있으므로 일단 문을 닫는 날까지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는 28일부터 새로 개통되는 역에 대한 영업 시운전이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 역장은 “신나원역(가칭), 안강역, 새로운 아화역, 모량신호장 등에 대한 영업시운전이 끝나야 하고 한 달여 시운전이 끝나면 이용자 점검 등 여러가지 점검을 하고 보완할 점에 대해 보완한 뒤 12월 말경 개통하게 됩니다. 경주역은 새로 생기는 역들의 개통에 맞물려 이후 본격적 이사 준비가 시작되고 폐역하게 되는 것이지요” 라고 했다. 따라서 폐역 D-day는 영업 시운전이 끝나봐야지 정확한 날짜를 알릴 수 있다고 한다.
-“정말 텅텅 비게 될 것 같습니다. 경주역 건물 안의 모든 것을 비우게 된다는 의미지요” “경주역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경주역 안의 여러 별도의 소속과 기관들이 없어지게 됩니다. 즉, 경주역 내 경주기관차 승무사업소와 소속 기관사 인원들, 시설팀, 건축사업소, 신호, 전기나 시설사업소 등 철도에 필요한 모든 사업들이 함께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죠. 동시에 일괄적으로 모든 기능들을 잃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필요한 장비 등은 포항역 쪽으로 이전, 통합하게 되고 나머지 건축물 등은 경주시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남습니다. 소소하게 비품이나 장비 등을 옮길 것과 폐기할 것을 분류해서 정리해야 하고요. 정말 텅텅 비게 될 것 같습니다. 경주역 건물 안의 모든 것을 비우게 된다는 의미지요”
경주역은 큰 규모의 역이어서 한꺼번에 옮겨가야 하는 현재로선 여러모로 일들이 산적해 있으며 경주시와의 인수인계 과정이 남아있다고 했다. “자산관리는 코레일 본부 자산관리팀에서 인계를 하고 경주시에서는 경주 역사 건물, 주차장 등과 연관해서 임대 형식으로 운영관리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역장은 폐역의 가장 마지막 절차로는 코레일이 국토해양부에 폐역 고시를 하고 국토부에서 고시가 되면 완전한 폐역의 수순을 밟는 것이라고 했다.
-경주 철도교통의 백년대계 보는 시각 아쉬워...시 외곽지인 신경주역에서의 주변 교통편을 확충한다고 해도 지금 같은 편리함은 누리기 어려워 경주역이 문을 닫게 되면 일제강점기 이후 지표 조사를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 3만2000평 역사부지에 대한 지표조사만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발굴이 끝났다 하더라도 보존이냐 박물관으로 옮길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시간이 또 걸린다고 한다. 경주역 존립과 폐쇄의 문제는 그만큼 간단치 않은 것이다. 경주역의 모든 기능이 신경주역으로 흡수될 경우, 수도권이나 대전, 부산 등에서는 빠른 접근을 할 수 있지만 연계 교통편의 경우 경주역이 훨씬 우월했다. 경주역을 통해 많은 관광객이 유입되고 역 주변에 대표 관광지가 밀집돼 있어 시 외곽지인 신경주역에서의 주변 교통편을 확충한다고 해도 지금 같은 편리함은 누리기 어렵다는 것이 지론이다.
이에 대해 허남태 전 경주역장은 “동해선과 중앙선의 복선전철화가 완료돼 경주역이 폐쇄되고 현곡면 새 역이 개업하면 머지않아 포항 가는 ktx가 간간이 설 수 밖에 없고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경주 철도교통의 백년대계를 보는 시각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불국사, 경주, 서경주 이 세 역의 기능을 신경주역이 흡수해야 하는데 사실은 거의 기존고객 3분의 2는 흡수하지 못할 것입니다. 현곡역도 서경주역처럼 많은 기능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포항에서 영천, 동대구, 부전가는 열차만 이용할 수 있으니 역사 위치가 다소 문제지요. 경주를 거쳐 가는 많은 일반열차이용객들은 거의 흡수할 수 없으니까요”라고 했다.
-경주시, 경주역 운행 종료 아쉬워하는 시민들에 소소한 이벤트 준비, 경주역은 100년의 시간동안 3세대에 이르는 시간적 역사적 가치가 존중돼야 할 자산으로 미래의 먹거리 폐철도 활용 전담기구인 경주시 폐철도활용사업단 TF팀 관계자는 “폐철도 활용사업은 도시재생, 신교통수단 도입, 관광,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도시발전의 새로운 이정표다”라고 했다.
또 “향후 동해남부선과 중앙선의 복선화 사업이 종료되면 경주시와 철도시설공단, 한국철도공사 세 기관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폐철도 역사(驛舍) 활용방안이 대립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주시의 주도적이며 주체적인 의지에 따라 그 활용도가 달라질 것이다”라면서 “폐철도 자원은 일제강점기 잔재이지만 100년의 시간동안 3세대에 이르는 시간적 역사적 가치가 존중돼야 할 자산으로서 미래의 먹거리로 경주시가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 “경주역 운행 종료를 아쉬워하는 시민들의 정서를 달래기 위해 ‘경주역 기차여행단(가칭)’을 모집해 경주역에서 불국사역 정도로 떠나보는 간단한 이벤트를 다각도로 구상중이다. 코레일 측과 협의를 해서 결정할 것이다”고 전했다.
이런 움직임은 민간에서의 여러 기획들로도 감지되고 있는 차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