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이 익어가면서 가을걷이가 한창인 계절입니다. 농부들의 가을 일들이 차곡차곡 갈무리 되어가는 요즈음이죠. 지난 주말,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화들짝 놀라 움츠려 있다가 모처럼 탑리 천관사지가 바라보이는 들녘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올해도 폭우와 거센 바람을 잘 견뎌준 곡식이 대견하리만치 가을 황금 들녘은 풍요로웠습니다. 교동과 월정교 맞은편에는 탑동 ‘천원마을’이라 불리는 아담한 동네가 있습니다. 한편, 오릉 맞은편에는 ‘탑리’라는 점잖은 동네도 있지요. 숭덕전(경북문화재자료 254), 오릉(사적 172), 천관사지(사적 제340호) 등 이 마을 전체가 조상이 물려준 문화재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모습입니다. 탑리나 천원마을에서 천관사지가 바라보이는 들녘에선 지난 8일 경부터 벼 수확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올해 첫 벼 베기는 지난달 초 도지동의 한 농가에서 시작됐다고 하니 한 달 여가 지나서죠. 논두렁을 따라 자생한 억새도 은빛 자태로 들녘의 풍성함에 운치를 보태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가을 장맛비가 지리하게도 내렸습니다. 벼 수확기에 내리는 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직 수확하지 못한 벼에 검은 반점이 생기는 등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오랜 비가 그치고 며칠 가을햇살이 따가웠습니다. 이 마을 농부들도 기다렸다는 듯 바로, 연이어 벼를 베기 시작했다는군요. 그동안 잦은 비로 질퍽한 논바닥 이어서 추수를 미뤘다가 다행히 논바닥이 꾸덕꾸덕해지면서 별 무리없이 콤바인이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 들녘을 종횡무진하는 ‘콤바인(combine)’ 이라는 기계는 농삿일에 혁신을 불러온 일꾼입니다. 콤바인은 농토 위를 주행하면서 벼나 보리, 밀 등을 동시에 탈곡하거나 선별작업을 하는 수확기계를 지칭합니다. 수확한 곡식알은 그대로 탱크에 저장하거나 부대에 넣어서 건조장으로 운반되고요. 금방 콤바인이 지난 자리에는 벼 씨알들이 탈곡통에 채워지고 난 뒤 볏짚들은 머잖아 사료로 쓰일 모양새로 ‘촤르르’ 가지런히 참하게도 누워있습니다. 그런데 기계만이 능사가 아니었습니다. 콤바인이 진입하기 힘든 구간, 즉 논의 가장 모서리 부분은 직접 낫으로 벼를 베어야 콤바인이 진입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우리가 사는 경주는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이런 가을의 풍경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경주는 농어업 종사자가 많은 도농복합도시의 대표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황금색 들녘도 머지않아 황량한 빈 벌판으로 남겨져 다시 봄을 기다릴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들 마음의 빈 공간에도 거둬들인 알곡들로 가득 채워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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