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치러진 제32회 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여 지났고 패럴림픽도 마쳤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 해 미뤄 치룬 데다 무관중 경기로 인해 역대 어느 때보다 싱겁게 치러쳤지만 올림픽은 많은 스포츠 영웅을 남겼고 그들의 영웅담으로 인해 한 동안 방송과 신문이 들 떠 있었다. 특히 메달을 딴 선수들이 집중 조명됐고 올림픽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만큼 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마음껏 기량을 펼쳤거나 장래가 기대되는 선수들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선수들을 지도하고 감독해 최고조의 기량을 발휘하게 하는 코칭 스텝들에 대한 관심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축구나 야구 등 최고 인기 종목의 감독을 제외하면 경기장 밖을 지배하는 코칭 스텝들은 역시 그림자에 머물렀다. 그런 와중에도 대한민국 탁구의 살아 있는 신화, 경주 출신 강문수 감독은 올림픽이 끝난 후 새롭게 주목 받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이번 도쿄 올림픽 탁구에서는 단연 신유빈 선수(대한항공)가 주목됐다. 올해 17세의 신유빈 선수는 이번 올림픽 탁구 부문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기록됐고 마침 룩셈부르크 출신의 57세 최고령 백전노장 니 시아리안 선수와 맞붙어 4대3 승리를 거두며 세계 탁구인들의 애정 어린 관심을 받았다. 비록 메달을 따는 데는 실패했지만 신유빈 선수는 개인전과 여자 단체전 등에서 활약하며 미래 유망주로서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신유빈 선수는 귀국 후 대한항공 조원태 대표이사에게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테니 비행기를 선물해 달다”는 당찬 요구를 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신유빈 선수는 올림픽 후 각종 예능에 출연하며 부산한 시간을 보내느라 일각에서 혹여라도 페이스를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들었다. 그러나 지난 8월 치러진 2021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파이널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7전 전승, 심지어 7경기에서 단 3세트만 내주는 놀라운 경기력을 과시하며 앞으로 우리나라 여자탁구의 확실한 대들보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신유빈 선수는 대한항공에서, 아버지 신수현 선수는 삼성생명에서··· 2대 걸친 스승, 영입의 바탕 마련그런 신유빈 선수를 흐뭇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강문수 감독. 신유빈 선수는 강문수 감독이 삼성생명 총감독에서 은퇴한 뒤 2019년 6월부터 다시 대한한공 여자탁구단 감독을 맡은 후 손수 스카우트하고 이전의 선배 선수들처럼 정성을 들여 기운 유망주다.
강문수 감독과 신유빈 선수의 인연은 신선수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 신유빈 선수의 아버지 신수현 수원탁구협회 전무가 바로 강문수 감독의 삼성생명 감독시절 제자였기 때문. 신수현 전무는 탁구장을 운영하며 어린 신유빈을 직접 지도했는데 발군의 기량을 보이는 딸의 진로에 대해 강문수 감독과 수시로 상담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마침 유소년 및 청소년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이 단양에서 합숙 훈련을 했는데 이때 강문수 감독이 직접 볼 박스 훈련을 시키며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움직임, 감각, 스텝, 박자와 리듬 등이 국가대표 선수 못지않았어요. 중학교 마치고 고등학교 갈 무렵에는 이미 고교생 실력을 초월해 고등학교 진학하면 연습상대조차 없을 것이라 판단했지요. 마침 유빈이 자신도 일찌감치 실업팀으로 가고 싶은 포부를 밝혔어요”
결국 대한항공 탁구단 이유성 단장과 신유빈 선수의 에이전트가 알아서 조건을 맞추도록 주선하고 강문수 감독은 신유빈 선수의 지도계획에 박차를 가했다. 강문수 감독과 오랜 기간 호형호제하며 돈독한 우의를 나누어오며 은퇴한 강문수 감독에게 간곡히 감독직을 맡아 달라 부탁했던 이유성 단장은 강문수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신유빈 선수를 대한항공으로 이끌었다.
강문수 감독과 신수현 전무, 강문수 감독과 이유성 단장의 끈끈한 신뢰가 없었다면 애초에 대한항공을 눈여겨보지 않았을지 모를 영입이었다. 강문수 감독 개인에게는 아버지와 딸 2대를 지도하는 대한민국 탁구거장다운 초유의 기록까지 보유하는 순간이었다.
2020년 2월 정식으로 입단한 신수현 선수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2번에 걸친 도쿄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2번 모두 1등을 차지하며 최연소 국가대표로 합류, 이번 올림픽을 치렀다. 우습게도 단박에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는 바람에 신유빈 선수는 국내 대회는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하고 바로 올림픽에 직행하는 특별한 기록도 가지게 되었다.
“신유빈 선수는 쉐이크 핸드형 선수로 백핸드 감각과 박자, 리듬, 투지 등이 탁월하지요. 포핸드 활용도(득점원)을 높이고 서비스를 조금만 더 강화하면 국제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겁니다”
강문수 감독은 신유빈 선수에게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이르지 못한다는 말로 혼신을 다할 것을 주문한다.
-유승민 선수처럼 어렸을 때부터 인연··· 좋은 대비, ‘금메달 딸 테니 비행기 달라’는 투지에 내심 대견 이쯤에서 기자는 슬며시 유승민 선수와 신유빈 선수를 비교해 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IOC위원이자 대한민국탁구협회회장인 유승민 회장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강문수 감독과 인연을 시작해 중학교 3학년 때 삼성생명에 입단 국가대표단까지 두루 고락을 함께 한, 강문수 감독이 가장 아끼는 제자다.
“유승민 선수는 포핸드 전형으로 볼 파워, 순발력, 경기운영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났지요. 거기다 집중욕과 승부욕이 누구보다 강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강문수 감독은 특히 유승민 선수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경쟁 선수를 압도하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려면 단순히 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만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메달 따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최소한 동메달이라도 딴다는 것이 강문수 감독의 지론!
유승민 선수가 세 번의 올림픽 출전에서 금, 은, 동을 고루 땄던 것도 바로 이런 강렬한 투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그런 강문수 감독에게 ‘파리에서 금메달 딸 테니 비행기를 달라’고 요구한 신유빈 선수의 당찬 결기는 다른 이들이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차원의 대견함이었다. 게다가 신유빈 선수는 훈련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알고 스스로 알아서 자신을 관리한다며 은근히 만족감을 드러낸다.
신유빈 선수를 초대형 국가대표로 만들며 대한항공 여자탁구의 면모를 일신한 강문수 감독이지만 이런 파란은 실상 강문수 감독이 대한항공 감독을 맡으면서 이미 시작됐다. 강문수 감독이 대한항공 감독직을 맡은 것이 2019년 6월부터인데 이후 불과 2개월 만에 이은혜 선수를 국가대표 선수로 등극시켰고 3개월 만에 단체전 우승을 일궜다. 취임 이후 코로나19로 단체전 출전을 자제하면서도 그간 치른 5개 경기에서 3번이나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에서 이룬 실적은 빙산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 강문수 감독은 우리나라 탁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을 남긴 명감독으로 그를 뺀다면 대한민국 탁구사가 통째 사라질 만큼 수많은 신화를 남긴 명감독이다. 대한민국 탁구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 반드시 강문수라는 이름 석 자가 그 뒤를 받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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