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유난히 맑고 투명한 요즘입니다. 청명한 대기 속으로 뽀얀 구름떼가 두둥실 떠다니는 풍경은 한낮의 더위를 환기시켜 줄 만큼 아름답습니다. 그 하늘은 여름밤이 깊어져도 퇴색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핑크빛에 가까운 보름달이라도 뜰라치면 경주의 사위(四圍)가 온통 환한 달빛의 축복 아래 머물지요.
가벼운 옷차림으로 보문호반길을 걸었습니다. 코로나와 무더운 여름 날씨로 쉬이 지치는 이럴 때면 시원한 바람 한 자락이 간절해집니다. 귓가를 간질이는 바람은 더위에 지친 여름날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하죠. 하루 일과를 마친 저녁이면 한여름 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보문호반길을 걸어봄직 합니다. 보문관광단지 호수변에 조성된 이 길은 호수 사방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뷰를 감상하는 호사도 덤으로 누릴 수 있으니까요. 여름밤 호수길은 한적하기도 하니 최적의 힐링코스라고 생각됩니다. 보문호반길의 총 둘레가 6.5㎞로 1시간40분 정도 소요된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걷다보면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곤 합니다. 살짝 물비린내가 올라오기도 하지만 그 역시 호숫가 여러 풍경중 하나라 나쁘진 않습니다. 혼자 걸어도 좋을 이 길을 마음 맞는 이와 함께 걷는다면 금상첨화겠습니다.
지난 24일은 6월 보름이었습니다. 호반길을 한참 걷다보면 힐튼호텔 쪽으로 건너가기 전 경주월드의 청룡열차와 바이킹 롤러코스터 등 놀이시설과 원형 대관람차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보문관광단지의 랜드마크로 자리하고 있기도 하죠. 또 경주세계엑스포 공원에 높게 세워진 경주타워(높이 82m)인 황룡사지 구층목탑 투각에는 야간 조명으로 음각이 더욱 뚜렷하게 보이고 그 건너편에서는 모 기업의 연수시설로 쓰이는 황룡사 구층목탑 형태를 모방한 건축물이 멀리 바라보입니다. 경주월드와 경주힐튼호텔 사이 위치한 ‘황룡원’ 건물이 그것인데요. 황룡원은 역사 속 유물인 신라시대 황룡사 구층탑 양식의 중도(中道)탑을 중심으로 정신문화, 의식교육 공간으로 사용되는 연수원이라고 합니다. 고대 건축물을 현대의 과학기술과 건축 공법으로 재해석한 건축물이죠. 야간 경관도 뛰어나답니다.
바람결 속에서 호반길을 걸으며 문득 밤하늘도 한 번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글쎄, 그 건물 꼭대기 즈음에 보름달이 둥실 걸려 있는 거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만월(full moon, 滿月) 이었죠. 비록 재해석한 황룡사 구층목탑 건축물이었지만 보름달이 걸려있는 풍광은 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서정적이었습니다. 유난히 크고 환한 달빛은 연한 오렌지 빛을 띄며 영롱한 달빛을 쏟아 내리고 있었습니다. 보름달의 기운을 제대로 받았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참 행복했습니다. 한여름 밤, 달빛 샤워 한 번 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