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천내 마을’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 마을의 재매정길에서 좁디좁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포석로 샛골목에서 여러 꽃들로 마당이 정갈하게 가꿔져있어 단박에 시선을 끄는 집이 있습니다. 65년간 이 마을에서 나고 성장한 토박이가 이 집 주인인데, 여느 주택가 담벼락에서처럼 부착돼있는 전기계량기 안이 초록 담쟁이 이파리로 꽉 차 있었습니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날이었기에 계량기 속은 습기로 가득했구요. 그런데 ‘남의 집’에 무단침입(?)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동거하는 이 녀석의 친화력과 생명력에 새삼 감탄했습니다. 이 식물의 끈질긴 생명력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이리도 억척스러울줄은 몰랐죠.
담쟁이덩굴은 울타리나 담에 기어오르며 사는 덩굴이란 순수 우리말로 처음부터 ‘담쟝이’, ‘담장이덩클’ ‘담장이넝굴’ 따위로 불려왔습니다.
담쟝이는 울타리의 ‘담’과 접미사 ‘장이’의 합성어로 ‘담에 붙어사는 녀석’이란 뜻이랍니다. 한자어로는 ‘파산호(爬山虎)’라고 하는데 ‘산에서 기어 다니는 모진(매서운) 풀’로 풀이하며 한번 정착하면 좀처럼 죽지 않는다는 식물입니다. 이 식물은 돌담이나 바위 또는 나무줄기에 붙어서 살고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주로 미관을 위하여 건물이나 담 밑에 심으며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 식물이기도 하지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개구리 발가락처럼 생긴 덩굴손 끝부분에 흡반(吸盤)이라고 하는 빨판 같은 것이 보이는데 이는 매우 강한 흡착력으로 담을 기어오르는 강력한 매개가 됩니다.
이 기막힌 동거를 한참 바라보자니, 어느 영화에 등장한 대사 한 부분이 스쳤습니다. ‘삶은 이다지도 약한 것을’...,이라는 대사였는데 연약하고 불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삶에 비해 이 작은 식물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길어지는 코로나로 인해 점점 지쳐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단단한 틈 사이를 비집고 터를 잡아 당당히 살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이 부러웠습니다. 역경을 극복하는 유전자가 우리 몸속에 있다는 말로 서로에게 힘이 되기도 하는 요즘, 한가로운 마을에서 만난 계량기 속 담쟁이 넝쿨에서 여러 단상이 떠오르는 한 때였습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