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할인마트와 편의점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구멍가게는 확연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들과는 다른 이색적인 공간으로 보이는 구멍가게들은 이제는 우리들 향수의 대상으로 간간이 명맥만 유지할 뿐입니다.
월성동(구 인왕동) 선덕여고 옆을 지나칠려면, 비탈진 집들 사이로 옛 기와가 초록색 어닝(차양)과 잘 어우러져있는 작은 슈퍼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최근, 이곳 맞은편에는 새롭게 문을 연 베이커리 카페와 세련되게 단장한 카페들이 서 너 곳 들어서 성업 중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큰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모양새의 작은 가게가 바로 ‘송화슈퍼’ 입니다.
정감이 넘치는 송화슈퍼의 주인장은 최국이(75세) 어르신입니다. 사라져가고 있는 대표적 업소인 이곳 송화슈퍼의 오래된 진열대에는 동네 작은 가게가 그러하듯, 오밀조밀 군것질 거리들과 생필품들이 가지런하게 진열돼 있죠. 이곳 주인장은 예전에 세를 놓은 이후, 인수해 장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슈퍼는 특히 바로 옆 선덕여중의 역사와 함께 한다고 하는데요, 1968년 선덕여중이 신축이전하자 집을 짓고 가게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가게를 연지는 53년 정도 됩니다. 그 중 40여 년간은 제가 장사했지요. 내 집이니까 이곳에서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사가 가장 잘되었던 시기는 30년 전 정도인 것 같아요” 이 근처에 세 곳의 슈퍼가 더 있었지만 하나둘씩 그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주인 할머니는 주로 여학생을 대상으로 오래 장사해서인지 아직도 맑고 고운 피부를 가진 동안이셨습니다. ‘요즘은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소일거리 삼아 담배나 팔고 야간자습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에게 군것질 거리나 팔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오뎅 삶고 떡볶이, 라면, 계란도 삶아 놓기 바빴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학생들 스타킹부터 학생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이 다 구비돼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학교 구내식당과 매점이 있어 매상이 영 시원찮다고 하십니다. 맞은편 골목에 살던 동네 주민들도 철거로 인해 이 동네를 다 떠나고 없는 상태라고 하지만 오가는 어르신들이 이곳 가게 앞에 놓인 평상에서 삼삼오오 쉬어가는 모습을 자주 보곤 합니다. 그런 모습도 하나의 어여쁜 풍경이 되곤 하고요. 원래 이 집 간판은 ‘송화상회’였는데 8년 전 ‘송화슈퍼’로 개명해 디자인한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옛 간판이 없어져 세월의 운치가 다소 덜해 안타까웠지만 가끔씩은 내외국인들이 사진을 찍어 가기도 한다는 송화슈퍼. 아직도 우리 지척에는 53년이나 한 곳에서 우직하게 버텨 온 구멍가게가 있다는 것이 참 따뜻하게 다가오는 저녁입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