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수 십 년 전, 옛 정취를 간직한 동네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황오동은 언제나 정겹습니다. 기자도 바람 선선한 날 저녁이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 그 중 첫 번째로 이곳 황오동 산책을 좋아합니다.
전랑사지 근처 조용한 한옥들 사이, 한옥 한 켠에 아담한 카페 ‘예스터데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카페 옆 아주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보면 작고 소박해보이는 ‘미진 미용실’ 하나가 있습니다. 원효로 207번길에 위치한 이 미용실은 너무 작고 낮아 얼핏 스쳐지나치기 쉽상입니다만 아는 이들은 다 안다고 하는 미용실이랍니다. 덕지덕지 흰색칠을 여러번 칠한 듯한 미용실 벽 사이로 난 작은 출입문은 겨우 미용실 내부를 들여다 볼 만큼 작습니다.
그러나 ‘고데, 컷트, 파마, 드라이’ 라고 씌어진 간판에서 한 눈에도 이 동네 터줏대감격 미용실임이 짐작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시로 이곳을 지나치다보면 늘 좁은 미용실 한 가득 손님들로 북적입니다. 퍼머를 하고 있는 한 할머니는 “이 부근 할머니들 다 와요. 전 용강에서 이곳까지 왔어요. 택시기사도 이 집 모르는 이가 없어요. 여기엔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멋쟁이들도 자주 와요”라면서 주인장 대신 이 미용실의 위상을 슬며시 내비치고요.
올해 73세인 이 미용실 원장은 바로 이 동네 전랑지에서 자란 토박이라고 합니다. 베테랑 헤어디자이너인 원장님 얼굴엔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가 피어 있습니다. 가녀린 체구로 55년 미용업 경력 중 43년을 이 작은 미용실에서 영업했다면서 “여든 넘은 할머니들은 더욱 저렴하게 받아요. 커트 5000원, 퍼머비 1만5000원이지요. 고데기로 하는 올림머리는 특히 자신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미용실의 집기들은 주인과 함께 오랜 시간을 같이해 온 듯합니다. 낡은 듯한 고데기도 닳아서 오래됐지만 원장님 최고의 파트너라 합니다. 아직도 올림머리를 할 때 사용하곤 한다는데 이 미용실의 산 역사임을 방증하고 있었습니다. 원장님의 얼굴엔 오랜 경력에 대한 자부심과 이제는 자신을 닮은 할머니들의 머리를 매만지는 즐거움이 진하게 전해집니다. 손님들은 여름이면 옥수수를 쪄서 나눠먹기도 하고 겨울이면 구운 고구마나 짜장면을 시켜 먹기도 합니다. 수다로 그간의 묵은 걱정을 잠시 내려놓기도 하고 손님들의 새로운 머리 스타일에 대해 품평을 하며 서로 추켜세우기도 합니다. 사람 사는 냄새 진한 이 동네서 오래된 가게가 그저 평화롭게 오래 가기를 바랄뿐입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