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자, 보언을 모르면 향가의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 오늘은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연구 도중 놀랐고 글을 읽을 독자들은 읽는 도중 놀랄 것이다. 그러나 믿는 것이 좋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필자 스스로도 믿을 수 없어 수없이 검증을 하였지만 결과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신라왕릉을 지키는 무인석 중에 이국적인 모습이 있다. 처용을 울산에 온 이슬람 상인이라고 주장하는 논문도 있다. 필자는 이러한 연구결과가 말하는 신라의 글로벌한 모습에 대해 예전에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가볍게 넘겼었다. 그러다가 이국적 요소를 빼놓고는 신라를 이야기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향가 속에 흉노, 돌궐, 곤이, 사타 등 고대 아시아 대륙의 지축을 흔들던 민족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향가의 작자들은 향가 속에 이민족의 맹장들을 내세워 자신들의 조상을 치켜세우거나 천지귀신을 위협하는 임무를 맡겼던 것이다. 처용가의 해당 구절을 살펴보자.可 入良 沙 寢矣 見 昆극 입량 사 침의 견 곤들어와 방을 보니오랑캐 임금의 이름 극/들다 입/ 잠깐 량/사타족의 약자 사/자다 침/어조사 의/보다 견/종족의 이름 곤 극(可)과 사(沙), 곤(昆)이라는 세 개의 글자가 나오고 있다. ‘극(可)’은 돌궐의 왕 칸(可汗)이고, 사(沙)는 돌궐의 한 부족이던 사타(沙陀)이고, 곤(昆)은 주나라를 괴롭혔던 곤이족(昆夷族)이다. ‘극(可)’이라는 문자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뜻이 ‘오랑캐 임금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돌궐족은 그들의 왕 칭호를 ‘칸(可汗)’이라고 했다. ‘극(可)’은 바로 ‘칸(可汗)’의 약자였다. 극(可)은 14편의 신라 향가 중 원왕생가, 처용가, 헌화가에 출현한다. 칸(可汗)은 돌궐에서 왕을 부르던 말이다. 돌궐의 왕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칸은 제2대 묵철 칸(默啜可汗, 재위 691 ~ 716년)이었다. 그는 측천무후 당시 당나라를 공격하여, 당나라 남녀 9만 명을 몰살시키기도 했다. 천하를 뒤흔들던 공포의 대상이었기에 초대받은 칸은 아마도 ‘묵철 칸’이었을 것이다. 사(沙)라는 글자는 사타돌궐(沙陀突厥)의 약자다. 신라 향가에 총 8회나 나타나고 있다. 살던 곳이 천산산맥 부근의 사막 지대였기에 사타(沙陀)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비록 지금의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신라에서는 어린아이까지 알았던 용맹한 민족이었을 것이다. 이들 글자는 연출자에게 백댄서나 백 코러스를 출연시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라고 지시하던 글자였다. 이들은 고유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나와 민족의 고유한 춤을 추었다. 신라는 요즘 못지않은 글로벌한 나라였다. 향가 제작법에 따르면 처용가는 이랬다.토함산 떠오를 때의 달 아름다워라.밤에 일하는 벼슬이라서여기저기 돌아다님이어.잠깐 들어와 방을 보니다리 넷이 좋아하고 있어라.둘은 내 아래오고둘은 누구 다리 아래이고본래 내 아래여마오는아내 빼앗긴 남편을 어찌하여 하릿고. 공연 도중 당나라 측천무후를 경악에 빠뜨렸던 묵철 칸과 사타돌궐족, 곤이족이 몰려나와 관객을 공포에 빠뜨렸다. 그는 처용의 아내를 괴롭히던 천연두 역신에게 썩 물러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겁먹은 역신이 처용 앞에 납작 엎드려 목숨을 빌었다.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안도했고 환호성을 지르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처용이 추던 공포의 춤은 서역의 돌궐, 사타, 곤이 민족의 이국적 춤이었다. 서라벌의 밤은 이들의 경연장이었다. 처음 들어보신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민족의 왕과 군사들이 경주에 다녀갔음을 향가 제작법 속 보언이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그러한 밤이 신라의 밤이었다. 보언을 모르면 신라의 밤을 알 수가 없다. 보언을 모르고 풀면 향가의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