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제작법의 핵심, 보언(報言)이란 것이 있었다. 서라벌 하늘에 불길한 혜성이 나타나고 국경에는 왜군이 쳐들어오는 일이 벌어졌다. 혜성은 불길한 징조였다. 놀란 왕실이 ‘융천사’라는 승려를 불러 위기의 수습을 맡겼다. 그는 향가를 지어 혜성이 뿜어대는 불길한 기운이 신라 쪽이 아니라 왜군을 향하도록 해달라고 기원했다. “혜성의 불길함을 없애주시고, 우리가 왜군을 무찌르도록 하여 주시라.” 융천사는 향가 속에 보언(報言)이라는 글자를 집어넣고서는, 공연 연출자들에게 그 글자가 가리키는 대로 춤을 추어 혜성을 위협하면 된다고 했다. 보언이란 향가를 공연할 때 배우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던 글자였다. 혜성가 속에 보언이 어떻게 씌어 있고,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보자. 道尸掃尸星 利 望良古 도시소시성 리 망량고 길쓸별(혜성) 이 바라보였고 (길 도/ 시체 시/ 쓸다 소/ 시체 시/ 별 성/ 이기다 리/ 바라다 망/ 길하다 량/ 옛 고) 위는 혜성과 왜군의 출현에 대항해 융천사가 지었다는 ‘혜성가’의 첫구절이다. 혜성을 뜻하는 사전 속 우리말은 ‘길쓸별’이다. 한자로 쓰면 ‘도소성(道掃星)’이다. 작자는 ‘도소성’이라는 글자 사이에 ‘시(尸)’라는 두 글자를 못을 치듯이 단단히 박아 넣었다. ‘도시소시성(道尸掃尸星)’이 된 것이다. ‘시(尸)’라는 글자가 바로 보언이다. 노래패, 춤패, 밴드들이 이 글자에 따라 적을 시체를 만들어 버리는 춤과 음악을 연주하였다. 지시하는 보언을 가지고 있었기에 향가는 시가 아니고 뮤지컬이 되었다. 노래패들은 노래를 불렀다. 혜성가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오래토록 다스린 동쪽 땅 강의 물줄기가 말라 막힘없이 트이게 되어 적이 돌아 다니오는 성이 되었어라. 경계병을 세워 망을 보라했고. 왜가 다스리기 위해 군사를 두어 와 봉화가 타올랐사온 변방은 늪 지역이었도다. 세 명의 화랑이 풍악산을 보아 주오시려다가 이야기를 들었고, 한 달여 왜가 여덟 번 쳐들어 와 여러 차례 베었나니. 그 후 길쓸별이 바라보였고. 혜성이었다. 혜성은 ‘배반’이다.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나니. 후구 막힘없이 트였다 함은 맞닥뜨린다는 것이다. 시체가 되어 물에 떠다니는 것은 왜군들이야. 이는 우군과 왜군이 견주었다는 것이로다. ‘혜’라는 글자는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나니. 혜성이 겁을 먹고 왕실과 융천사의 뜻을 이루어주었다. 신라는 일본군들을 물리쳤고, 혜성의 불길함도 해결하였다. 향가는 뮤지컬의 대본이었다. 공연을 위해 마당에 무대가 마련되었다. 노래패들이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이 춤패들은 보언에 따라 춤을 추고, 밴드들은 악기를 연주했다. 보언이 가지고 있는 대담함에 놀라게 된다. 무대 위에서 보언을 연출하는 춤패들은 상대 배우를 몽둥이로 때리고, 시체로 만들고, 파묻고, 칼로 능지처참했다. 화살을 쏘아 죽이고, 따비로 땅을 파 묻었고, 사나운 돌궐족과 흉노의 왕과 군사들을 떼로 보냈고, 무찌른 상대방의 시체를 들판에 내버리고, 그들의 시신을 땔나무로 덮는 춤을 추었다. 고대 경주 땅 어느 마당에서 향가패들은 때로는 장엄하게, 때로는 흥겹게, 때로는 격렬하게 마당극을 공연하였다. 세계사로 보더라도 서기 60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공연되던 무대예술의 시나리오를 14편이나 가진 민족이 우리 말고 또 어디 있나 싶다. 향가는 경주시가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무대 예술이다. 연출가의 상상력을 더해 향가를 새로이 각색하여 지난 여름 1,000만 관중을 모은 디즈니 영화 ‘알라딘’못지않은 경주 문화의 컨텐츠로 만들 필요가 있다. 멋진 후손들이 되어보는 것도 비록 힘은 들겠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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