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글자 2역할, 향가문자는 암호문이었다. 암호문이란 관계된 사람만 그 내용을 알지,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도록 트릭을 써둔 문장이다. 경주 땅에 암호문자가 있었다. 향가문자다. 제작자들은 자신들의 소원을 천지귀신에게 알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향가문자들을 조립하면서 그 내용을 일반인이 알지 못하도록 감추어 놓았다. 애써 감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소원에는 개인적 프라이버시가 있을 수도 있고 또는 엄중한 국가 기밀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알려져 모두가 알게 된다면 될 일도 안 되고 소동만 일어날 것이다. 그 옛날 경주 사람들이 만들어 낸 정교한 암호 기법을 깨뜨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제망매가다. 첫구절의 향가문자들은 다음과 같이 조립되어 있다.生 死 路隠 此矣 有생 사 로은 차의 유생과 사의 길은 여기에 있어야 하나니.날 생, 죽다 사, 길 로, 근심 은, 이 차, 어조사 의, 있다 유 내용을 전하는데 꼭 필요한 향가문자는 ‘생사로 차유(生死路 此有)’ 라는 다섯글자 뿐이다. 여기에 ‘근심 은(隠)’이라는 문자가 추가되어 있다. 이 글자는 군살 같지만 꼭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의도적이다. ‘은(隱)’이라는 글자가 맡고 있는 역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말 ‘~은’을 표기하고 있다. 또 하나는 ‘근심을 없애달라’는 뜻을 표기하고 있는 데, ‘근심’이라는 뜻에 머물지 않고 ‘근심을 없애달라’는 뜻으로 까지 확장되어 있다. 하나의 글자가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생과 사의 길’이 가진 의미는 ‘나이든 사람이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자식이 부모 앞에 죽고, 누이가 오빠 앞에 죽는 비극적 사건이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자 월명사(月明師)의 이름에도 이런 일을 막아달라는 뜻이 숨겨져 있었다. 월(月)은 ‘세월 월’이었고, 명(明)은 ‘질서가 서다 명’이었다. ‘세월의 질서가 바로 섬, 즉 어린 자가 부모나 오빠 앞에 죽는 비극을 막아 달라’는 소망이 이름에 담긴 뜻이었다. 제망매가 전체를 감상해 보자.생과 사의 길은(隱) 여기에 있어야 하나니.‘밥을 몇 번 먹었느냐’라는 말을 보내도 ‘나는(隱) 가여’ 하고‘죽는 것은 나이 차례여’라는 말을 보내도‘나는 가여’ 하였고니.가을날 서둘러 부는(隱) 바람이 아님에도여기에 저기에 떠올랐다 떨어지는 나뭇잎들이여.한 무리 잎들은(隱) 나뭇가지로부터 나왔으나가는(隱) 곳은 나이 순 아니더라.아야,아미타불이여 누이를 맞이해다오.나 재 올리라 해놓고누이 맞이해주기를 기다리고 있고여. 겉으로 보기에는 누이의 극락왕생을 비는 노래가 분명하다. 그러나 ‘은(隱) 또는 는(隠)’이라는 글자가 있어서 ‘늦게 태어난 자가 먼저 죽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소원을 천지귀신에게 전하는 노래로 반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경주 땅의 지적 엘리트들이 만들어 낸 은밀한 소통법이자 향가제작법의 하나였다. 이렇게 의도를 감추어두는 제작법은 신라향가 14편 모두에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고대 어느 민족도 이렇게 독특하고 치밀한 암호기법을 만들어 낸 예가 없다. 암호 전문가의 평가에 따르면 향가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암호문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만들어진 암호 중 가장 치밀한 암호라고 하였다. 그랬기에 지난 100여년 간 유수한 암호 해독가들이 고배를 들고 말았다. 경주인들의 향가문자는 인류의 언어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 작품이다. 향가는 인간과 신 사이의 암호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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