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子曰 我未見好仁者 惡不仁者 好仁者 無以尙之 惡不仁者 其爲人矣 不使不仁者加乎其身 자왈 아미견호인자와 오불인자러라. 호인자는 무이상지요. 오불인자도 기위인의에 불사불인자로 가호기신이니라.有能一日用其力於仁矣乎 我未見力不足者 蓋有之矣 我未之見也 유능일일에 용력어인의호아? 아미견력부족자러라. 개유지의라 아미지견야로라. <주석> 無以尙之 :그 마음이 인을 좋아하는 고로 천하의 사물이 그에게 더 보탬이 없다는 말이다. 尙은 加. 不使不仁者加乎其身 :마음이 능히 불인한 일을 버려서 조금도 그 몸에 미치지 못하게 함을 말한다. 有能 一日 句 :어떤 사람이 하루아침이라도 분연히 인에다 그 힘을 쓰겠는가? 함이다. <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인을 좋아하는 자와 불인을 미워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진정으로 인을 좋아하는 자는 세상에서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다. 진정으로 불인을 미워하는 자도 불인으로 하여금 그 몸에 더 이상 가하지 못하게 한다. 능히 하루라도 그 힘을 인에다 써 보았는가? 나는 아직 그 힘이 모자라 하지 못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대개 그런 사람이 있겠거늘 나는 아직 못 보았다. <묵상> 이 장에서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我”라는 일인칭이다. 대개 “吾”라고 쓰는데 여기서는 我라고 하였는데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공자가 보지 못한 것은 두 종류의 사람이다. 好仁者와 惡不仁者이다. 곧 인을 좋아하는 자와 불인을 미워하는 자인데 호인자가 긍정적이라면 오불인자는 부정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얼핏 보면 호인이 오불인보다 좀 더 높은 경지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 공자의 말씀에도 호인자에게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하여 더 높이 평가하는 듯 하다. 그러나 세상엔 호인자만으로는 안 된다. 오불인자가 없다면 이 세상에는 정의가 구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공자는 이 세상에 그런 호인과 오불인을 힘써 행하려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고 계신다. 하루라도 인에다 힘을 써보았는가? 인을 하려는데 힘이 모자라 못하는 사람을 못 보았다는 것이다. 있을 것도 같은데 아직 못 보았다는 것이다. 심각한 한탄이다. 오늘날도 같은 한탄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흔히들 말하기를 가난하여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또한 말하기를 남의 사랑이 전혀 필요 없을 만큼 부한 사람도 없다고 하지 않은가? 우리는 다 남에게 줄 사랑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다만 주지 않을 뿐이요, 또한 남의 사랑을 받아야 할 만큼 비어진 구석이 있어 늘 허전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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