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향가 제작 제3법칙소원을 비는 문자가 없다면 향가가 아니었다. 수로부인 이야기는 감포 앞바다 어장과 같았다. 거기에서 월척급 향가 제작법들을 낚아 올릴 수 있었다. ‘소원 빌기’, ‘많은 사람이 부르게 하기’, ‘보언의 사용’이라는 법칙이 그것이다. 이번에는 제3법칙인 ‘소원 빌기’에 대해 말씀 올리도록 하겠다. 신라 향가 14편 중에는 누가 보아도 소원을 비는 노래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는 작품들이 여러 개 있다. 당시 경주 땅 한기리라는 마을에 살던 희명(希明)이라는 여인의 아이가 실명하였다. 분황사 천수관음 그림 앞으로 아이를 데려가 노래를 부르게 하자 아이가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불길한 혜성이 나타나자 해와 별의 질서를 바로 잡아 달라 하였다는 노래, 역신으로부터 미인 아내를 구해달라는 노래도 있다. 모든 향가는 단 한 편의 예외도 없이 소원을 비는 노래들이었다. 소원을 비는 문자가 없으면 향가가 아니었다. 이는 차츰 확인될 것이다. 수로부인은 널리 알려져 있는 여인이다. 그녀는 잠자리에 배가 고파 툭하면 남자를 따라 가버려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수로(水路)라는 이름 속에 감추어 둔 뜻은 ‘물길’이었다. 물길이 사라졌다는 말은 가뭄으로 논밭에 물을 대는 수로가 말라 없어졌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수로가 있느냐 없느냐는 농사 짓던 신라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어느 날 수로부인이 동해 바닷가에서 용에게 잡혀 갔다. 한 시라도 빨리 수로를 구해내야 했기에 그녀의 남편은 부랴부랴 백성들을 모아 호소하도록 했다. 노래 가사를 소개한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 남의 부녀 앗아간 죄 얼마나 클까 네 만일 거역하고 바치지 않는다면 / 그물로 잡아 구워서 먹으리 수로가 말라 사라졌으니 가뭄이 든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수로를 내놓으라’고 빌고 있다. 비가 오게 해달라는 말이다. 이 노래와 함께 묶여 있는 향가 속에는 비가 내리게 해달라는 말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까. 헌화가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紫布岩 乎 过자포암 호 과자포암 지나가는 길에 들리셨네. 자줏빛 자, 베 포, 바위 암, 감탄사 호, 지나가는 길에 들리다 과 ‘한자의 뜻을 우리말 순서로 배열한다’는 제작법에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작법에 따라 풀어보면 남녀교접을 좋아하는 수로부인과 변강쇠 같이 힘세고 노련한 노옹(老翁)이라는 사내의 밀고 당기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포암, 지나가는 길에 들리셨네. 잡은 고삐 놓아 어미소 버리라 하신다네. 부인께서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신다면 한 묶음 꽃 꺾어 바치리요. 수로가 남자를 따라 가버리면 물길이 말라 논밭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다. 농민들의 마음이 갈라지느냐 아니냐는 수로부인에게 달려있다. 작자는 남편 순정공에게 수로가 노련 남을 따라가지 않도록 일심으로 지키라는 임무를 주었다. 이름조차 수로에게 매달리라고 순정(純貞)이라고 했다. 정황으로 볼 때 헌화가는 기우제 향가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독자들께서 보시듯 비오라는 내용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향가 작자들은 기원하는 내용을 향가의 문자 속에 은밀하게 감추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향가 제작법을 알아야 찾을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경주 시민의 조상님들께서 소원을 어떻게 감추어 두었는지 알아볼 것이다. 세상은 몰라도 경주 시민들은 알아야 한다. 할아버지들의 솜씨이기 때문이다. 김유신 장군의 후예인 필자가 그들의 방법을 1000여년 만에 폭로해 보여 드릴 것이다. 모든 향가는 소원을 비는 노래였다. 소원은 문자 속에 숨겨 두었다. 소원을 감추어 놓은 문자가 없다면 향가가 아니었다. 이것이 향가 제작 제3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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