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뜻으로 적는다 / 우리말 순서로 배열한다 향가 제작법을 알려면 신라인들이 문장을 어떠한 방식으로 썼는지 알아야 한다. 난 5월 23일 경상북도 발 기사 하나가 서울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울진 성류굴 속에 신라 때의 글들이 새겨져 있고 그것을 판독했다는 기사였다. 심현용 울진군 학예사와 이용현 경주 박물관 학예사 두 분의 이름이 남녘의 지평선 위에서 두둥실 떠올랐다. 두 분은 자신들이 말하신 내용이 향가 제작 제1·2 법칙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까? “560년 6월,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신라인들은 왕의 행차를 기록하며 성류굴 속에 한자의 뜻을 우리말 순서로 배열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두었다. 찬기파랑가 첫 구절 속에서 이를 확인하자.咽 嗚 爾 處 米열 오 이 처 미목이 메어 슬프다 당신이 처형됨 이목이 메다 열 /슬프다 오 / 너 이 / 처리하다 처 / 쌀 미 한자의 뜻 그대로를 우리말 순서에 따라 배열해 놓은 문장이란 걸 알 수 있다. 신라 향가 모든 문장이 약간의 예외를 빼놓고 다 이랬다. 이러한 법칙으로 찬기파랑가를 해독해보자. 목이 메어 슬프다, 당신이 처형됨이. 이슬 내린 새벽 기운 달은 그물에 걸려서리. 흰 구름이 달을 좇아 떠가고 있는데. 그는 어찌하여 아랫사람들을 바로 잡으려 하였는가. 여덟 명을 죽게 한 것은 물을 맑게 하는 이치였습니다. 억센 화랑의 일 처리 하심은 도리에 합당하심이었습니다. 그는 늪같이 느리게 흐르오는 내를 다스렸습니다.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서덜을 싫어했던 화랑이었습니다. 낭도들을 지탱해 주오려는 마음을 가진 다른 화랑을 보지 못해서 그를 좇음이라. 아사. 잣나무 같으신 화랑이여. 그대는 가지들을 높이 닿게 하기를 좋아 하였습니다. 눈이 내립니다. 풀과 나무들이 겨울을 맞았습니다. 꽃이 집니다. 맨 끝 구절을 다시보자. 끝 구절 세 글자가 우리의 가슴을 치고야 만다.花 判 也화 판 야꽃이 집니다꽃 화 / 지다 판 / 넓고 큰 그릇 야 화랑 ‘기파(耆婆)’의 이름을 제1·2법칙으로 보면 향가의 의미가 더욱 선연해진다. 이름의 한 자는 ‘억세다 기(耆)’, ‘사물의 형용 파(婆)’다. ‘억센돌이’라는 뜻이었다. 화랑도는 통일 전쟁이 끝나고 100여 년이 지나자 기강이 해이해졌음이 분명하다. 기파랑은 이를 바로 잡으려 하였다. 그러다 벌어진 예기치 않은 참사로 어느 눈 내리다 그친 날 새벽 즈음 달빛 아래서 그는 경주 땅 어디에선가 칼날 아래 꽃잎으로 지고 말았다. 그가 경주 땅을 떠난 지 1300여년이 지났다. 그를 잊지 못하는 경주 시민들과 함께 기파랑의 명복을 빌어 마지않는다. 기파랑이 말한다. 향가 제작 제1법칙은 ‘한자의 뜻’이고, 제2법칙은 ‘우리말 순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