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름 속에 숨겨둔 뜻 수로부인과 노옹의 이름 속에 숨은 적나라한 바람기 행여나 감치거논 아제나 아지메 있으면 손잡고 동해바다 헌화로에 가볼 일이다. 수로라는 사모님이 1000년도 더 전에 높은 자리 발령받아 가는 서방님 뒤따라 가다가 억수로 멋진 한량 만나 서방질 했던 길이라더라.
그 짓하려면 토함산 으슥한데 차 세워놓고 하거나 대구 가서 해야지, 백주 대낮에 길거리에서 그랬으니 소동 안 나겠나. 들통 날 일 하기는 왜 해. 그 일 때문에 지금까지도 지저분한 소문이 나 우리 경주 처자들 혼사길 어려워져. 옛날 같으면 이른 손자 볼 서른 넘은 나이에 시집도 못가고 있는 것이 보통 일인가. 쓸 만 한 직장 아들 둔 어미들이 동네 처자 대학 다닐 때 행실 까탈스럽게 살핀다는 소문까지 났어.
향가에 나오는 사람, 이름 지을 때 허투루 짓는 법 없다 카데. 사람 팔자 이름 팔자라니 손자 낳아 작명소 갈 때 만 원짜리 두어 장 더 쥐어 주더라도 깊은 뜻 넣어 달라고 신신당부해야 한다.
수로(水路)라는 이름 살펴보자고. ‘물길’이야 그렇다 치라도 심상치 않은 내용이 있는 것 아니가. ‘주수로(走水路)’란 말 살펴보소. ‘남녀가 성교한다’라는 뜻이 있다 하네. 이런 망측할 일이 있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꼬 그 날도 이름 값 단디 했다카지 아메. 바닷가에서 노옹(老翁)이라는 남자를 만났다고 테레비에도 나고, 아이놈들 학교 교과서까지 실렸다 카데.
그 놈 이름 한번 들어 보라고. 얄궂게도 노련하다는 노(老) 자라꼬. 거기다가 사내 놈 그것이 엄청 크고 기까지 잔뜩 오른 것을 말할 때 쓴다카네. 옹(翁)자라는 그 글자가 기가 콱 막히제. 경주 남자 모두 야코죽이는 어마무시한 사람 아이가. 숙달되고 노련하고 물건은 거대하고 힘까지 잔뜩 오른 남자라 카네.
그런 놈 싫어할 년 누가 있겠나? 몇 달 굶은 년이 남정네 만나 귓속 말 나누었으니 좁은 바닷가 동네방네 시끄럽지. 자주빛 철쭉꽃 백송이로 매질하는데 좋아라 안자빠질 년 천지간에 누가 있나?
서방놈만 불쌍하제. 지만 모르고 있었겠제. 서방 이름이 순정(純貞)이라든가 뭐라든가 했어. 마누라 하나만 안다카데. 정조? 정조만 지키면 단가, 짐승 노릇할 때는 해야 사내지. 그런 꼴에 즈그 마누라 꽁무니 쫄쫄 따라 다닌다 하지 않나. 뻔하다꼬. 마누라 바람필까 봐 그카는 거제. 답답다 카이, 진짜로. 꼴에 벼슬은 강릉태수란다. 우리 임금 성덕왕이 사람이 너무 좋아 한 자리 내 준 거제. 이번 인사 끝난 뒤 월성 총무과장이 경상도지사님한테 전화해 알려주었는데 왕님이 각별히 챙겨주셨다 카데. 신이 난 강릉태수 임지로 마누라 데리고 출발하며 양양 A급 송이버섯 꼭꼭 챙겨 먹고 뭔가 보여주겠다고 의욕이 대단하더라고 했어. 잘 생각했지. 참 강릉은 신라 때는 없었다 아이가? 고려 때 처음 나온 지명이라꼬? 웬 영문인지는 나도 몰라.
인사 명령지 보니 강릉태수(江陵太守)라고 꼼꼼하게 박아났다카데. 옥편을 찾아보니 강(江)은 큰 수로를 말하고, 능(陵)은 물에 담근다 캤어. 큰 수로에 물을 채우는 자리니 요새 말로 수리조합장 아닌감? 그년 마음에 철쭉꽃 피어 가뭄 오지게 들면 서방님은 불철주야 한 눈 팔지 않고 물 관리에 매달려 수로가 마르지 않도록 정신없이 일했다 카데. 일편단심 수로만 지킸다꼬. ‘순정(純貞)’이라는 이름이 씨가 되고 말었어.
그래도 이제 고위직 공무원 마나님 되었으니 행실 조신해야 하는데 제 버릇 어디 갈까? 떠나자 말자 한눈 팔기 시작했다 카네. 삼각관계여. 그년은 무슨 팔자에 복이 그리도 많나. 서방은 지 각시 수로에 물 채워주는 데만 매달리고 월급만 제때 꼬박꼬박 갖다 주는데 또 한 놈은 천하잡놈이라 “싸모님, 가정을 포기하세요” 카메 날마다 철쭉꽃 바쳤다 카네. 서방님 곁 조신하면 수로 찰랑찰랑 흥건해지고, 숨겨둔 놈 따라가면 수로 말랐다고 시끄럽지. 농민들은 수로 실종 신고 내고 가뭄 들었다고 기우제 지내고 부녀자들은 산꼭대기 올라가 아랫도리 내놓고 오줌을 쌌제.
수로는 사내 복은 많아도 연애복은 없어. 멋진 놈 따르자니 천하지대본 농민들이 울고, 순정을 따르자니 사는 재미가 없꼬. 수로는 물의 여신이고, 노옹은 가뭄의 신이라 카데. 제발 이름 잘 짓자고, 향가 팔자 이름 대로니. 그래서 어제 밤 9시에 향가 지으려는 화랑들이 서울 강남 작명학원에 등록했다는 뉴스까지 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