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부터 모두 14편에 걸쳐 향가의 새로운 해석법을 내놓은 김영회 선생으로부터 향가를 해석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향가학계에서 처음으로 ‘향가를 만드는 방법’을 본지 독점으로 공개한다. -편집자주 1.보언(報言)의 발견 양주동 선생의 묘소에서 고통을 하소연하다 문득 스파크 하나가 튀어 올랐다. 왜 향가 제작법을 찾으려 하는가. 47년 전부터 이를 찾아다니던 필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묻던 말이었다. 그러면 나는 말했다. ‘문화의 시작점에 서고 싶기 때문이다’
필자가 향가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72년 서울 광화문통에 있던 경희궁 터에서였다. 그 곳에 있던 학교에서 고교 생활을 했었고, 그 때 향가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 날은 전율이었으나 제작법을 묻는 필자에게 웃음 외에는 답이 주어지지 않았다. 필자는 제작법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그 날의 작은 결심 이래 4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필자는 우리민족으로는 향가를 최초로 해독해 내신 양주동 박사님의 묘소를 찾았다. 원왕생가라는 향가에 매달려 있을 때였다. 원왕생가는 모두 85자의 한자로 되어 있다. 그 날까지도 향가를 구성하는 글자들은 잘 짜여진 암호문처럼 서로가 서로를 단단히 결박하고 있어서 어떤 예리한 나이프로도 베어지지 않았고, 어느 날카로운 송곳으로도 뚫리지 않고 있었다. 묘 앞에 앉아 지하의 양주동 박사님께 암호와도 같은 향가 문자 해독의 고통을 하소연하던 그 때였다. 영감 하나가 스파크처럼 튀어 올랐다.
혹시 원왕생가 속에 있는 ‘향언운 보언야(鄕言云 報言也, 우리말로 보언이라 한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 앞 ‘질(叱)’이라는 글자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바로 돌아와 자료를 펼쳐놓고 확인에 들어갔다. ‘질(叱)’이라는 글자는 ‘꾸짖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신라 향가 979자 중 37번이나 나오는 핵심 글자다. 향가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나를 주의 깊게 살핀 것이다. 그 동안 수 없이 찾아왔던 영감 대부분은 필자를 배신하고 떠나갔으나, 그 날 만큼은 아니었다. 그 글자는 향가를 만들던 작자가 연출하던 이들에게 ‘꾸짖는 소리를 내라’고 지시하던 말임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질(叱)의 쓰임을 알게 됨으로써 그 주위 글자들의 쓰임 역시 알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다른 향가문자들의 작동 원리까지 알 수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향가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어 나갔다. 마침내 길을 나선지 40여 년 만에 천년이 넘도록 잃어버리고 지냈던 향가의 문자 체계를 발견한 것이다. 숨 막히는 긴장 속에 나와 향가만의 문답이 진행되었다. 향가의 비밀이 드러나던 그 때, 필자는 샹폴레옹이라는 프랑스인이 이집트 그림문자 체계를 발견해 낸 운명의 시각을 떠올렸다.
“1822년 9월 14일 정오 쯤, 샹폴레옹은 자기 집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거리를 단숨에 달려, 형의 사무실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가 소리쳤다. “발견했어!”
그는 몇 마디를 던지고는 기절해버렸다. 그의 형은 그가 죽은 줄 알았다.(문자를 향한 열정, 레슬리 엣킨스, 로이 엣킨스 저)
향가로 들어 갈 수 있는 틈바구니 하나를 발견하고, 이빨 빠진 나이프로 주변을 파헤쳐 입구로 만든 다음 깜깜한 동굴 속으로 조심조심 기어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우리가 이름으로 들어 알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토함산 자락에서 달을 보며 흘리던 처용의 눈물, 남녀교접에 굶주린 수로부인과 두 남자의 삼각관계, 나이 어린 하인들에게 섹스기법을 가르치던 선화공주의 평화를 향한 임무에 대한 이야기들도 먼지 쌓인 궤짝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거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원효대사님의 호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향언운 보언야(鄕言云 報言也)’라는 글자를 원왕생가 속에 무심결에 써두었던 그 분의 친절이 뜻밖에도 향가 속에 보언(報言)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게 해주는 단서가 되었고 이를 실마리로 하여 마침내 향가의 제작법을 찾아낸 것이다. 천금과도 같이 소중한 17자, 국보 이상의 의미를 가진 그 글자들은 다음과 같다.
惱 [叱古音 (鄕言云 報言也) 多可 攴] 白 遣賜 立 뇌 [질고음 (향언운 보언야) 다극 복] 백 견사 립 번뇌할 때는 밝은 불법을 보내주리.